5년 만의 '보건실 수능' "의대생 꿈 꼭 이룰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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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5일 서울 경복고 정문. 수험생 가족이 입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시험장 앞에서 아들과 손자의 고득점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시험을 마친 임수현(左)씨와 어머니 김애정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임씨는 시험 전날 백혈병 후유증으로 안과 치료를 받아 안구 마취제를 넣어 가며 시험을 치렀다. 얼굴 공개는 원하지 않았다. [사진=김태성 기자]

15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가락고등학교. 시험 종료를 알리는 짧은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김애정(49.여)씨가 종종걸음으로 보건실을 향했다. 보건실은 딸 임수현(23)씨의 수능 시험장이다. 보건실 앞에는 '제83 시험실. 16018301번'이 인쇄된 A4 용지 한 장이 붙어있었다.

김씨가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현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병마와 싸우느라 하얘진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돼 있었다. 김씨가 웃으며 다가가자 수현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책상 옆에는 안구 마취제 한 통이 텅 빈 채 놓여 있었다. 눈이 아프다는 학교의 연락을 받고 점심시간에 김씨가 가져다준 약이다. 한참 어깨를 들썩이던 김씨는 "시험을 끝까지 잘 마친 게 어디냐"는 어머니의 다독거림에 울먹임을 멈췄다. 그러나 얼굴에는 눈이 아파 시험을 기대만큼 잘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수현씨는 5년 전에도 수능시험을 봤다. 그때는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은 뒤였다. 당시 의사가 말렸지만 임씨는 구급차 안에서 시험을 치렀다. 수현씨는 2003년 6월 골수이식을 받아 백혈병에서 벗어났다. 이후에도 수현씨는 휴유증으로 이비인후과와 안과, 내과를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들러야 했다. 수현씨는 지난해 7월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다시 세웠다. 김씨는 "수현이가 두 번째 삶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를 돌봐주겠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현씨의 5년 만의 수능시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병마는 수현씨 공부를 계속 방해했다. 이번 시험 전날에도 안과에 들러 각막에 난 상처를 치료받았다. 몸이 아파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혼자 공부했다. 공부하는 시간도 하루 5시간을 넘기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부모는 딸의 건강을 걱정해 공부를 말렸다.

공부를 욕심만큼 많이 하지 못했지만 성적은 조금씩 올랐고, 바라던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임씨는 몸이 아파 공부를 욕심만큼 하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같은 처지의 환자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쉼 없이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사진=박종근,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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