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 전문가들의 조언 '이것만은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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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한인 NGO 1호' 이병희 씨

이병희(33.사진) 굿네이버스 국제협력부 과장은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NGO 1호'로 불린다. 2002년 4월 아프간 임시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카불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까지 4년4개월 동안 의료.교육.여성 분야에서 일했다. 굿네이버스는 21일 아프간 주재 한국 영사로부터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치안이 악화됐다. (소속 회원들은) 모든 활동을 정리해 귀국하길 당부한다"는 e-메일을 받았다. 이 단체 회원 80여 명(현지인 포함)은 아프간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이 과장은 "한 사람의 안전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구호 활동이 완전히 정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지는 봉사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체계적인 조직을 통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긴밀히 협조하는 구호 단체와 개별 차원에서 접근하는 봉사단은 구분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가는 도로는 치안의 사각지대다. 그들이 타고 간 버스를 사진으로 보고 깜짝 놀랐다. 외국인이나 이용할 법한 버스였다. 2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움직인 점도 문제다. 탈레반은 대중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어떻게든 소문이 나게 돼 있다."

-뉴욕 타임스는 버스 기사의 말을 인용해 '납치된 한국인들이 현지 경찰에 자신들의 활동을 알릴 경우 여권이나 신분증 등을 요구하며 성가시게 할 가능성이 있으니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보도했는데.

"단기간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한다. 현지 치안을 맡은 NGO나 경찰은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보는 테러를 피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현지 가이드의 직관만으로 움직이는 건 매우 위험하다."

21일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피랍한국인이 타고가다 납치됐던 버스 앞에서 버스를 지키고 서있는 아프간 경찰들(로이터=연합뉴스)


-단기간 활동하는 한국인 봉사자들이 많은가.

"최근 부쩍 증가했다. 그와 함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커졌다."

-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나.

"무슬림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문화는 몸에 배는 것이다. 일주일, 한 달 있으면서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큰 종족에 초대받아 가면, 나는 장로들 앞에서 이슬람식 기도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외국 선교사들은 대를 이어 80~90년씩 선교 활동을 하기도 한다."

-안전에 대한 대비는.

"철저한 안전 훈련 외에는 방법이 없다."

-훈련이 빛을 발한 경험이 있나.

"지난해 5월 말 미군 차와 아프간 택시가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택시 안에 있던 현지인이 모두 숨졌다. 분노한 사람들이 외국 기관들을 상대로 공격을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이동 중에 폭도와 마주쳤다. 나는 소다수를 만들어 먹는 알약을 입 안에 넣었다. 계속해 거품이 입 밖으로 나왔다. 동료가 '전염병에 걸린 친구를 병원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소리치자, 그들은 길을 내줬다. 모두 훈련 덕분이었다."

강인식 기자

"안전이 봉사보다 우선" 한비야 월드비전 구호팀장

세계 100여 개국에 현지 사무소를 두고 있는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은 직원들의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월드비전 긴급 구호팀 한비야(49.사진) 팀장은 "안전 매뉴얼은 우리의 바이블"이라며 "안전은 봉사에 우선한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위험도에 따라 재난 등급을 '그린(Green.낮음), 옐로(Yellow.중간), 레드(Red.높음.테러리스트 활동), 블랙(Black.심각.분쟁 지역)' 네 단계로 나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등 주요 도시는 레드, 그 외 지역은 블랙이다. 월드비전의 등급에 따르면 '주요 도시에는 현지인 중심의 최소 인원만 파견하고, 그 외 지역은 아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팀장은 "납치 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블랙 등급"이라며 "현지 NGO에 문의만 했어도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고 말했다.

위험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관들은 매일 '조정 회의(cordination meeting)'를 연다. 서로 정보를 교환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월드비전 측은 "조정 회의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소규모의 봉사 활동 단체들에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며 "여유가 없다면, 공개된 정보라도 챙겨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 팀장은 "그마저도 힘들면, 현지 NGO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라"며 "실시간으로 자기 위치를 알리는 것은 필수"라고 조언했다.

철저한 안전 훈련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국제 구호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안전 훈련소를 운용하고 있다. 월드비전 측은 "테러 등 여러 상황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실전 같이 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팀장은 "소방관의 임무는 불구덩이 속에서 '안전하게'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며 "만약 '안전하게'라는 단어를 뺀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봉사활동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따져 보라"고 권하고 있다. 신념만을 가진 무경험자가 현지에 가면 의식주와 통역이 필요한 또 하나의 구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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