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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형, 딱 보니 되는 사건이야"…現 권력 다 등장한 17년 전 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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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하인드: 론스타 그날

비하인드: 론스타 그날

비하인드: 론스타 그날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한 신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1년 뒤에도 튼튼할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구둣방에 주문합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 구둣방에 더부살이하던 천사 미하일은 엉뚱하게도 슬리퍼를 만듭니다. 그날 밤 신사의 하인이 찾아와 “주인이 돌아가셨으니 장화 대신 장례용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말합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천상의 존재뿐입니다. 소설 속 신사처럼 사람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만일 2006년 어느 날, 어느 현장으로 돌아가 “이 중에서 미래의 대통령과 국회의장, 경제부총리,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다면 몇 명이나 믿었을까요. 믿기 힘든 미래를 현실로 만든 그곳은 ‘론스타 사건’을 수사 중이던 대검 중수부였습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www.joongang.co.kr/plus)에 연재 중인 ‘비하인드: 론스타 그날’에는 그들의 그 시절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론스타 사건 수사에 가장 먼저 발을 담근 건 당시 중수부의 막내였던 이복현 검사(현 금융감독원장)였습니다. 영어와 수사에 능한 데다 공인회계사 자격 보유자였던 그는 ‘2학년 검사’(임관 후 두 번째 임지에서 근무 중)로는 파격적으로 중수부에 발탁됐습니다.

중수부 선임급이었던 윤석열 검사(현 대통령)는 그해 6월 말 첫 ‘지원군’으로 론스타 수사에 투입됐습니다. 그는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사법 피해자’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첫 구속 현장을 함께한 이도 윤 검사였습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한동훈 검사(현 법무부 장관)였습니다. 구력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금융 수사 경험이 풍부했던 한 검사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 자료를 일별한 뒤 ‘방장’이던 이동열 검사(전 서울서부지검장)에게 “형, 이거 할 수 있어. 딱 보니까 되는 사건이야”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호언은 현실이 됐습니다.

이들의 수사 대상에 김진표 의원(현 국회의장)과 추경호 재경부 금융정책과장(현 경제부총리)이 있었습니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였고 추 과장은 변 전 국장 아래의 은행제도과장이었습니다. 특히 추 과장은 검찰에 열 번 이상 불려와 혹독하게 조사받았습니다. 그가 변 전 국장에게 “외환은행을 공개 입찰로 매각해야 한다”고 직언했던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수사 이야기가 담긴 첫 회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연재물은 12회까지 이어졌고, 서서히 종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수사 막판 돌출된 DJ 비자금 논란과 법정에 울려 퍼졌던 윤 검사의 호통, 재판이 진행된 2년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이 검사 등 공소유지 검사들의 악전고투, 그 와중에 국세청장을 구속했던 한 검사의 활약상 등 흥미로운 얘기들은 막판까지 이어집니다.

종지부는 반추(反芻)와 함께 찍힐 예정입니다.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은 중앙일보의 취재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면서 “우리에게는 ‘옛날’이지만 그들에게는 ‘지금’”이라고 화두를 던졌습니다. 연재물을 갈무리하면서 론스타와 ‘론스타 사건’ ‘론스타 수사’의 의미와 현재성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여정에 동참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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