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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경제는 언제나 정치 문제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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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한국 앞에 글로벌 경기 침체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한국은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다. 위기를 막아낸 경험과 세계 10위 경제권의 저력이 그 원동력이다. 하지만 예단하기는 어렵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금리·고물가·고달러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무역적자가 쌓이고 부동산은 고금리 직격탄을 맞아 서울 강남 지역 집값까지 흔들리고 있다. 미국-서방 대 중-러의 대립은 이 불확실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경제 불안은 어떤 형태로 퍼져나갈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폭주가 막을 내리면서 경제가 안정을 되찾나 했던 기대감부터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당장 민생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치솟는 집값에 놀라 ‘묻지마 영끌’에 나섰던 주택 구매자들은 집값 하락과 이자 폭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185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104%를 뛰어넘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빚진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원리금을 갚고 있지만 대응이 쉽지 않다. 집값 상승 희망은 신기루가 됐고,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보복소비로 불붙었던 자동차·가전·가구 소비 열풍도 주춤해지고 있다. 결국 소비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저축률도 높지 않아 소비 여력이 크지도 않다. 기업도 슬슬 긴축 경영에 나서면 소비·생산·투자가 동반 둔화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증시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온다. 바닥을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미 중앙은행의 금리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이 거듭되면 본격적인 패닉 장세가 나타날 수 있다.

무역적자 쌓이고 집값 하락세 전환
경제 불안해지면 국민 지지 못 받아
윤 정부, 경제 안정에 사활 걸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 및 수석들과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 및 수석들과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현 시점의 경제 상황을 짚어본 이유는 정치적 파장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직면한 경제 상황은 엄중하기 짝이 없다. 지난달 지방선거 직후만 해도 2024년 총선까지 거의 20개월 남았으니 이제는 규제 개혁에 전념하고 한·미·일 관계도 정상화해 미래를 향해 뛰면 된다는 희망적 얘기들이 넘쳤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불안해지면 그런 장밋빛 기대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중에서도 특히 물가는 정치 불안의 최대 변수가 된다.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경제 성장도, 정치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역사의 증언이다.

정치가 비교적 안정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준 조지 H W 부시의 지지율은 89%에 달했다. 1992년 부시의 재선은 당연시됐다. 당시 미국 언론은 부시와 민주당 예비후보 8명을 자이언트와 난쟁이들로 묘사했다. 난쟁이 중 한 명이 빌 클린턴이었다. 세계적 리더로 떠오른 현직 대통령 후보와 클린턴은 골리앗과 다윗이었다. 하지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클린턴의 한마디가 골리앗 부시를 단박에 쓰러뜨렸다.

미국에는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처음 당선한 이후 경기 후퇴가 없으면 현직 대통령의 재선이 이어졌다. 하지만 부시는 임기(1989~93년) 내내 경제 성적표가 좋지 않았다. 집권 3년 차에는 아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미 카터(1977~81년)와 제럴드 포드(1974~77년) 역시 경제가 신통치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후진국도 경제가 흔들리면 정권이 버티지 못한다. 최근 대통령이 사임한 스리랑카가 그 현장이다.

최근 경제 불안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경제 불안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얼마나 다를까. 민생을 편하게 해주면 지지를 받고, 아니면 외면당한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보수 진영에 정권을 내준 것도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성격이 컸다. 이렇게 보면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게 아니다. 더 나아가 시계는 2027년 대선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경제는 언제나 정치 문제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윤 정부는 경제 안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