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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충격의 판문점 사진 3대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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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신문을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여러 번 뒤졌다. ‘설마…'를 속으로 되뇌며 손을 움직였다. 결국 못 찾았다. 다른 신문들도 1면부터 훑었다. 아침에 보는 여섯 종합 일간지 중 세 개에 판문점에서 탈북민이 북한 군인에게 넘겨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13일 자에 한 컷도 없었다. 중앙일보를 포함한 두 신문에는 1면과 안쪽 면에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렸고 사설까지 있었다. 한 신문은 안쪽에 사진과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나머지 세 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6개 종합지 중 3개에 사진 없어 #양분된 우리 사회 단면 보는 듯 #언론 존재 의의에 물음을 던져

전날 온라인 기사로 그 사진들을 봤을 때 못지않은 충격이 느껴졌다. ‘충격’ 같은 상투적 표현을 쓰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신신당부해 왔는데,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자칭 타칭 ‘진보 언론’이라는 두 신문이 국가가 두 생명을 국경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을 외면했다. ‘합리적 중도’의 길을 간다는 다른 한 신문도 지면에 담지 않았다. 이해도, 수긍도 힘들었다. 한국의 주요 종합지가 3대 3으로 양분된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2019년 11월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 두 명을 판문점에서 북한으로 추방하는 모습. [사진 통일부]

2019년 11월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 두 명을 판문점에서 북한으로 추방하는 모습. [사진 통일부]

사진 공개 과정은 통일부→전주혜 의원(국민의힘)→언론사였다. 일부 언론이 독점적으로 확보한 게 아니었다. 사진이 공개된 때는 12일 오후였다. 밤늦게 급하게 퍼진 것이 아니었다. 게재 여부는 각 신문사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각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편집하는 게 옳다. 어느 것을 펼쳐도 크게 다르지 않던 ‘붕어빵 신문’은 어느덧 한 세대 전 유물이 됐다. 기자가 소속사가 아닌 다른 언론을 놓고 어떤 기사를 “썼네” “안 썼네” 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촌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타자 취존(취향 존중)이 대세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는다.

신문 3대 3 양분에 놀란 것은 우리 현실의 단면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탈북 어민 북송 사건 재조명을 전 정권에 대한 새 정권의 공격이라고 보는 사람이 이 사회에 상당수 있다. 새 정부 지지 하락 국면에 대한 ‘물타기’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정권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북송 사건에 애써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드는 사람도 봤다. 여기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자들(사실 여부가 확인된 적은 없는 북한과 전 정부 측 주장)을 제 나라로 돌려보낸 게 무슨 큰일이냐는 말이 더해진다.

한국은 다원주의 사회다. 신념과 정치적 지향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합의점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헌법에 적었다. 요약하면 ‘본질적 자유와 권리 보장’이다. 생명체인 인간에게 생명 유지는 자유와 권리의 전제 조건이다. 헌법을 따지기 전에 ‘사람의 목숨을 가장 중히 여긴다’는 모든 문명국의 기본 정신이다. 자국민이냐, 외국인이냐, 탈북민처럼 그 중간의 애매한 존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대북 유화 정책,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성사,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몇 명쯤 희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모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의 제2 정언명령이다. 21세기 문명국 한국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2019년 11월 15일 이 자리에 쓴 글의 한 대목이다. 다른 글에서는 ‘그들의 생사 여부는 모른다. 훗날 반드시 과정과 이유가 규명돼야 할 한국 정부의 반인륜적 행위다’고 썼다.

강제 북송 사건은 국가는 무엇인가, 권력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남긴다. 이제 그 위에 언론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냐는 물음이 포개진다. 어제 판문점 사진이 실종된 세 신문 중 두 개의 1면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138억 광년 밖 은하계 모습이 펼쳐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우주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내 옆의 우주를 버리고 먼 하늘만 바라보면 무엇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