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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코스, 극상의 프랑스 요리…미슐랭 스타 비결은 텃밭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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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세계적인 농업 국가답게 지역별로 다양한 재료와 요리가 넘친다. 이에 어울리는 고품질 와인이 가장 다양하게 생산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지역의 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로 오감을 만족시킨다. 채소와 식용 꽃은 셰프가 텃밭에서 직접 가꾼다. 맛의 원천은 원칙을 지키는 고집과 고객을 생각하는 정성임을 보여준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지역의 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로 오감을 만족시킨다. 채소와 식용 꽃은 셰프가 텃밭에서 직접 가꾼다. 맛의 원천은 원칙을 지키는 고집과 고객을 생각하는 정성임을 보여준다.

프랑스 관광청 초청으로 오베르뉴-론-알프 지역을 방문하면서 처음 도착한 도시가 리옹이라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았다. 리옹은 미식으로 이름 높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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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식의 수도' 별명의 리옹  

견직물 산업 등으로 경제가 발달했던 리옹은 오랜 미식 전통을 자랑한다. 여러 음식 평론가와 작가가 이 도시를 ‘세계 미식의 수도’라고 감히 말했을 정도다.

프랑스 리옹의 보퀴즈 시장. 좋은 음식 재료는 미식의 뿌리로, 음식문화에 날개를 달아준다.

프랑스 리옹의 보퀴즈 시장. 좋은 음식 재료는 미식의 뿌리로, 음식문화에 날개를 달아준다.

물론 리옹 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이 도시 출신의 셰프 폴 보퀴즈(1926~2018년)가 미슐랭 최고 평점인 별 세 개를 받고 리옹의 미식 문화를 이끈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론 강 연안에서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 음식 만드는 일을 예술로 여기고 자신을 연마해온 요리사, 셰프의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새로운 맛과 멋의 시도를 장려해온 시민들의 미식 사랑일 것이다. 이런 시너지가 요리를 예술로 승화하고, 맛을 문화로 진화시킨 힘이 아닐까.

프랑스 리용의 카페 테루아 식당. 스테이크 요리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채인택 기자

프랑스 리용의 카페 테루아 식당. 스테이크 요리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채인택 기자

리옹 요리의 힘은 서민 음식점 '부숑' 

리옹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푸르비에르 대성당을 순례하고, 그 아래쪽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 초대형 야외 극장을 돌아보고 나오자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그래서 찾은 곳이 근처에 있는 ‘부숑 레 리요네’라는 리옹 전통 음식점이었다.

직원 안은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이 리옹에 20개도 넘을 것”이라며 “리옹의 전통 음식을 판다는 것만 같은 뿐 모두 개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리옹 시내에선 어디를 가나 ‘부숑’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보였다. 원래 ‘마개’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리옹 전통요리를 파는 서민 식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미식의 수도'라는 프랑스 리옹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크넬. 위키피디아

'미식의 수도'라는 프랑스 리옹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크넬. 위키피디아

생선·고기·채소 갈아 낭튀아 소스 듬뿍 '크넬'

‘리옹 사람들의 부숑’이라는 뜻을 가진 ‘부숑 레 리요네’의 메뉴판에는 이 도시 특유의 음식과 일반 프랑스 음식이 뒤섞여 있었다. 동행한 리무진 기사 빌렘이 ‘크넬(Quenelle)’을 추천했다. 처음 보는 요리였다. 설명을 들으니 강꼬치고기(Pike fish)라는 작은 생선과 각종 육류, 채소를 갈아서 오븐에 구운 뒤 버터‧밀가루‧크림‧가재꼬리 등으로 만든 노란 색의 낭튀아 소스를 듬뿍 뿌려 먹는 음식이었다. 서민 음식으로 출발해 리옹 시민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생선을 갈아서 만든 것이니만큼 묵직한 느낌의 어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리옹의 보퀴즈 시장에서 만들어 파는 전통 디저트 '타르트 알 라 프랄린'. 견과류와 시럽으로 진한 장미빛의 디저트를 만든다.

프랑스 리옹의 보퀴즈 시장에서 만들어 파는 전통 디저트 '타르트 알 라 프랄린'. 견과류와 시럽으로 진한 장미빛의 디저트를 만든다.

달콤한 견과류를 품은 장미색 디저트 

이어서 ‘타르트 알 라 프랄린’이라는 리옹 전통 디저트의 맛을 봤다.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갈고 달걀과 크림 등을 섞어 장미색을 낸 디저트였다. 시장을 찾아보니 곳곳에서 팔고 있었다. 제과점에서도 볼 수 있었다. 프랄린은 원래 견과류에 시럽을 넣고 졸인 디저트다. 초콜릿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리옹의 보퀴즈 시장에선 소나 돼지, 양의 위장(양)을 이용한 다양한 리옹 요리를 볼 수 있었다. 앙두예트라는 이름의 위장을 이용한 소시지도 있었고, 위장을 양파와 요리한 ‘그라 두블르’라는 요리는 이채로웠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남부 고성에서 미슐랭 1스타와의 2시간 반 

프랑스 남부 그리냥의 ‘르 클레르 드 라 플륌’ 레스토랑에선 극상의 프랑스 코스 요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같은 이름의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이었다. 유기농 정원에서 전채와 음료를 맛본 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면서 저녁이 시작됐다.

2015년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여덟 코스의 정찬을 내왔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요리가 줄이어 나왔고, 그때마다 홀 직원들이 소스나 레몬, 후추 뿌리기 등 요리의 마지막 처리를 식탁 위에서 했다. 홀 직원들의 요리와 와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주방과 서빙 직원들이 한팀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매 코스에 맞춰 서로 다른 포도주가 나오는 페어링은 기본이었다. 코스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그릇이 동원됐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셰프 알라노, 8코스 마친 뒤 일일이 인사  

2시간 반에 걸친 코스 요리가 끝나자 알라노가 홀에 나왔다. 그가 만든 저녁을 먹은 손님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윽고 알라노는 모든 식탁을 일일이 돌며 고객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손님들은 기쁜 표정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간 자리마다 웃음이 터졌다.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내 자리로 온 그에게 간단히 ‘알라노 요리의 철학’을 물어봤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역 재료로 즐겁게 함께 하는 게 미식" 

“제 요리 맛의 뿌리는 지역 재료입니다. 저는 전통요리든 창작요리든 모든 재료를 주변에서 구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 어울리는 포도주도 대부분 이 지역에서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같은 흙에서 나오니까요, 채소는 레스토랑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제 밭에서 직접 재배해서 수확해옵니다.”

알라노는 이어 “와인은 지역 산을 기본으로 하지만 소믈리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으면서 요리에 가장 잘 맞는 걸로 선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식은 격식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 하는 것”이라며 “즐기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내는 8코스 저녁의 일부.

알라노 요리에 대한 기억은 론 지역의 자연에 대한 추억과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른 행선지로 떠나면서 인근을 한 바퀴 돌아봤다. 그날 저녁 즐겼던 향긋한 저녁 식사의 원천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검은 흙의 밭에서 자라는 채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일하는 주방. 아침에는 호텔 고객을 위한 뷔페 식장이 된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일하는 주방. 아침에는 호텔 고객을 위한 뷔페 식장이 된다.

에필로그-미슐랭 스타 아침식사 

다음 날 아침 호텔 정원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놀랐다. 알라노가 전날 저녁을 준비했던 부엌에 아침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놀란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동행한 오베르주-론-알프 관광청의 라헬 그리고리가 “아침 식사 중 따뜻한 음식인 소시지와 부댕(프랑스식 순대)은 알라노가 전날 손수 만든 것”이라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알라노가 고객들을 위해 늘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고리는 “이 호텔은 저녁은 물론 아침도 미슐랭 1스타”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세계 유일의 미슐랭 아침식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둘이서 한바탕 웃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준비한 아침의 일부. 프랑스식 순대인 부댕과 소시지는 미슐랭 스타 셰프 알라노가 직접 만들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에서 셰프 쥘리앙 알라노가 준비한 아침의 일부. 프랑스식 순대인 부댕과 소시지는 미슐랭 스타 셰프 알라노가 직접 만들었다.

미슐랭 스타 요리사가 만든 소시지와 순대라니. 유쾌한 경험이었다. 내가 소시지와 순대를 즐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식은 격식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 하는 것”이라는 알라노의 말이 귀를 맴돌았다. 우리는 미슐랭의 별을 입에 넣어서가 아니라 알라노의 음식에 대한 정성과 열정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몸이 따뜻해지고 배가 불러왔다. 살면서 즐거운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의 입구. 호텔과 레스토랑, 찻집, 그리고 선물 가게를 겸한다.

프랑스 론 남부 그리냥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르 클레르 드 라 플륌'의 입구. 호텔과 레스토랑, 찻집, 그리고 선물 가게를 겸한다.

'미식의 본고장'이라는 론 알프에서의 맛 경험은 이처럼 편안하게 막을 내렸다. 고집과 정성이 만든 셰프들의 구르메 장인 문화가 삶에 멋과 맛을 더해주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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