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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문 대통령 원상회복 못시킨 집값, 윤석열·최재형은 잡을 자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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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재형(왼쪽)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연합뉴스

최재형(왼쪽)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연합뉴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초 대한민국을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격상한 소식은 역사적이고, 감격스럽다. 그런데 우리 내부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좀 민망하다. 선진국 지위 격상을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다.
 인간 행복의 물적 기초인 의식주 조건을 따져보자. 의(衣)는 K-패션, 식(食)은 K-푸드로 불릴 정도로 한국의 매력을 지구촌에 뽐내는 경지다. 하지만 유독 주(住)는 참담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주거 문제는 선진국이란 말을 꺼내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주택 소유자는 가혹한 세금으로 고통받고, 전·월세를 전전하는 서민은 주거 불안과 배 아픔의 이중고를 호소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히 상승한 곳은 가격이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경실련 조사에서 문 정부 들어 4년간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이 무려 93% 폭등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 7월 기준 10억원, 전국은 5억원을 사상 처음 돌파했다.
 대책을 26차례나 쏟아냈지만, 집값과 전셋값의 원상회복은 빈말이 됐고 세금만 급격히 올렸다. 성난 민심이 서울과 부산시장을 뽑은 4·7 재·보궐 선거에서 투표로 확인됐다. 선거 참패 직후 여당은 부동산 정책을 수정할 듯 하더니 강경파에 밀렸고, 이재명·이낙연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은 반시장적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최근 집값과 전셋값이 다시 불안해지자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수급 요인보다 막연한 상승 기대심리, 투기 수요, 불법 거래가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책임을 시장에 떠넘겼다. 그러면서 "가격이 하반기에 큰 폭으로 조정될 것"이라며 "불안감에 의한 추격매수를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집 사지 말라"는 말이 불안·불만·불신을 키웠다.
 그렇다면 야당이 집권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야당의 정권교체론이 먹히려면 국민이 가장 고통받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오는 4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야권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두 예비후보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부동산값·세금 폭등해 국민 고통 #대통령의 "집값 원상회복" 공염불 #야당 주자들 정책 대안 제시해야

 윤 전 총장은 부인과 장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명하느라 바쁘다. "여성 인격 살인"이란 비판을 받는 '쥴리 벽화'까지 등장했다. 불법적인 네거티브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과 별개로 부동산 등 민생 정책을 제대로 공부하고 답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윤 전 총장은 종부세와 '임대차 3법'을 비판했지만, 아직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서울 종로의 한 건물 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에 대해 "여성 인격 살인"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장세정 기자

서울 종로의 한 건물 벽에 그려진 '쥴리 벽화'에 대해 "여성 인격 살인"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장세정 기자

 최 전 원장은 후발주자여서 얼마나 더 충실한 대안을 제시할지 궁금하다. 중앙부처 차관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은 "32년의 판사 경륜 외에 감사원장 3년여를 충실하게 보냈다면 행정부에서 10년 일한 것만큼 많은 경험과 식견을 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이 주요 업무인 감사원에서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 정책을 두루 살폈을 것이란 얘기다. 최 전 원장은 홍 부총리의 담화문에 대해 "국민을 협박했다"고 비판하면서 "과감하게 시장 친화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수는 부동산 문제를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 정부가 시장을 거의 망가뜨린 상태라 실타래처럼 꼬인 시장 기능을 과연 전통적인 방법으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당 유력 주자들은 학계와 시장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현실에 맞는 부동산 해법을 모색하고 정책으로 다듬어 국민 앞에 내놓고 평가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보는 철학이 중요하다. 좋은 집에 살고 싶고, 좋은 집을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범죄시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시장은 정부를 이길 수 없다"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돈키호테식 발상은 계속 실패했다.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억지로 물길을 막기보다는 물길을 터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부친 고 최영섭 해군 대령의 2020년 설날 가족 사진. [사진 최재형 캠프]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부친 고 최영섭 해군 대령의 2020년 설날 가족 사진. [사진 최재형 캠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징검다리를 놓은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산업화 성취를 좌파 세력이 폄훼한다고 우파는 비판해왔다. 뒤틀린 이념 세력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바른 궤도로 되돌리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다수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바로잡는 일도 시급하다. 그래야 야당의 정권 교체 주장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거창한 정치 구호는 메아리 없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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