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국제시장' 잡화점 꽃분이네, 2500원 커피 판다…그가 본 선거

중앙일보

입력 2021.02.15 00:37

업데이트 2021.02.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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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426만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부산 국제시장 잡화점 꽃분이네의 최근 모습. 수십년간 잡화점이었던 가게는 영업이 어려워 지난해 6월 25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점으로 전환했다.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임대료 부담이 커진 떄문이라 한다. 직원 2명을 내보내고 주인 혼자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서울과 부산 시장은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고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다. 장세정 기자

1426만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부산 국제시장 잡화점 꽃분이네의 최근 모습. 수십년간 잡화점이었던 가게는 영업이 어려워 지난해 6월 25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점으로 전환했다.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임대료 부담이 커진 떄문이라 한다. 직원 2명을 내보내고 주인 혼자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서울과 부산 시장은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고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코로나19 때문에 고향 오가기가 여의치 않아 마음이 무거웠던 설이었다. 하지만 연휴 동안 단연 화제는 4월 7일로 다가온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였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르는 이번 보궐선거는 설 연휴 직후에 더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차기 대권 구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기 과열 양상을 보이고, 부산시장 선거는 가덕도 신공항과 한·일 해저터널 이슈까지 가세해 후끈 달아올랐다. 그래도 이번 선거는 단체장들의 성추행이 1차 원인을 제공했기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제2 도시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성추행 보궐선거'로 규정될 것이다.

두 전직 시장의 충격적인 성추행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4월 7일 보권선거가 치러진다. [중앙포토]

두 전직 시장의 충격적인 성추행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4월 7일 보권선거가 치러진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야당 대표 시절 자당 소속 정치인의 중대한 귀책사유로 재·보궐 선거가 있을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 규정을 만들어 정치 혁신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낙연 대표는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그 규정을 개정했고,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가 대표 시절에 만든 당헌이라고 해서 신성시될 수 없다"며 추인했다.
 야당 때의 소신 주장과 여당이 된 뒤의 태도 변화가 손바닥 뒤집는 듯했다. 무엇보다 838억 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성추행 보궐선거'를 초래한 책임을 집권 여당이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문제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 가족이 '2차 가해의 주범' 중 한 명으로 꼽은 남인순 의원에 대해 민주당은 강력한 징계를 하지 않고 있다. 집권 여당이 이처럼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니 여기저기서 2차 가해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박 전 시장의 부인이 썼다는 손편지를 보자. "나의 남편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박원순의 삶을 끝까지 믿고 끝까지 신뢰합니다. 박원순 정신의 본질은 도덕성입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박원순의 도덕성을 믿고 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유족의 입장이야 있겠지만, 성추행을 확인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온 마당에 이런 손편지를 공개한 의도가 의심스럽다.

2019년 7월 부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나란히 앉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문 대통령은 수차례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7월 부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나란히 앉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문 대통령은 수차례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상호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이 손편지를 언급하면서 한술 더 떴다. 그는 SNS에 올린 글에서 "박원순 시장은 제게 혁신의 모델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던 동지였다.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서울시 정책을 펼쳐가겠다"고 했다. "박원순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우 예비후보에 대해 성추행 피해자는 2차 가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피해자는 "유족에 대한 의원님의 공감이 피해자인 저와 제 가족에게는 가슴을 짓누르는 폭력이다. 누군가에 대한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며 입장문을 냈다.
 서울과 부산에서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던 설 연휴 직전에 필자는 현장 민심을 듣기 위해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서울시민이지만 KTX로 2시간 40여분 거리인 부산의 여론 풍향도 궁금해서다.
 부산 구도심에 있는 부평깡통시장에서 만난 국밥집 사장은 "코로나로 야시장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울상이었다. 50대 양복점 여사장은 "장사로 밑지니 요즘은 주식투자에 열중한다"고 했다. 1426만명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 속 잡화점 꽃분이네를 찾아갔다. 입구에 세운 '아이스커피 2500원'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흥남철수 등 현대사를 응축한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꽃분이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잡화점 가게인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돌본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의 삶을 그렸다. [CJ 엔터테인먼트]

흥남철수 등 현대사를 응축한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꽃분이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잡화점 가게인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돌본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의 삶을 그렸다. [CJ 엔터테인먼트]

2001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해진 잡화점 꽃분이네의 최근 모습.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6월 잡화점을 접고 커피점으로 바꿨다고 했다. 장세정 기자

2001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해진 잡화점 꽃분이네의 최근 모습.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6월 잡화점을 접고 커피점으로 바꿨다고 했다. 장세정 기자

 -잡화점에서 커피를 파는 이유는.
 "2001년 잡화점을 인수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지난해 6월 커피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서울과 부산 시장이 성추행으로 사퇴해 보궐선거를 치른다.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라 본다. 다만 그 정당이 사건 발생 이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 관심이 있나.
 "아무리 바빠도 투표는 꼭 해왔다. 성추행도 문제지만 실제 투표할 때는 경제 정책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볼 것이다."
 -무엇이 제일 힘든가.
 "백신이 나왔으니 코로나는 결국 끝날 것이란 기대라도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이 아직도 제일 무섭다. 그동안 직원 2명을 쓰다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올해부터 혼자 일한다. 일회성 재난지원금보다는 임대료 부담을 덜어 주면 좋겠다."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르는 보궐선거가 현장에서는 경제 실정 심판론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랏빚으로 재난지원금을 퍼주면 표를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보다 성추행에 대한 엄벌 의지, 경제 실정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먼저 아닐까.

부산의 대표적 번화가였던 남포동 자갈치역 일대에 임대 안내문이 나붙은 빈 점포들. 장세정 기자

부산의 대표적 번화가였던 남포동 자갈치역 일대에 임대 안내문이 나붙은 빈 점포들. 장세정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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