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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그 사람들'이 인사 독식하니 민심이 떠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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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쇄신을 위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노영민 비서실장을 지난해 12월 말 잇따라 경질했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유임시켜 논란이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추 장관 임명 당시.[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쇄신을 위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노영민 비서실장을 지난해 12월 말 잇따라 경질했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유임시켜 논란이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추 장관 임명 당시.[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정 난맥상으로 지지율이 폭락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연말·연초에 잇따라 인사 쇄신 카드를 뽑아 들었다. 집권 5년 차를 맞아 누적된 실정을 반성하고 늦게라도 고친다면 국민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
 코로나19 와중에 망언과 추태로 국민 스트레스를 가중했던 노영민 비서실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경질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국면 전환용 꼼수 인사에 머물면 쇄신 효과는 반감하고 레임덕만 가속될 것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사람만 바꾸고 실패한 정책에 집착하는 듯하다. 정의당조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부적격' 판정했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엉터리 부동산 대책을 24회나 쏟아낸 김현미 전 장관의 실패를 변창흠이 획기적으로 바꿀 것 같지 않다. 추미애 후임 박범계 후보자는 "검찰개혁 완수"에 집착해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 4년간 누적된 인사 파행으로 공직사회가 밑바닥부터 골병이 들었다는 점이다. 능력보다 진영을 앞세운 편향된 인사 때문에 공직사회에 요행과 냉소 풍조가 만연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온갖 논란과 정책 실패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붙잡고 있다. 그런 가운데 외교부는 '연정라인'이 장관과 1, 2차관 등 요직을 꿰찰 정도로 '싹쓸이 인사'가 벌어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온갖 논란과 정책 실패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붙잡고 있다. 그런 가운데 외교부는 '연정라인'이 장관과 1, 2차관 등 요직을 꿰찰 정도로 '싹쓸이 인사'가 벌어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예컨대 외교부와 국방부의 속을 들여다보면 인사 폐해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외교부는 강경화 장관(73학번), 최종건 1차관(대학원 98학번)에 이어 최종문 2차관(78학번)까지 이른바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라인'이 싹쓸이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82학번)도 연정 라인이다. 외교 소식통은 "고교 평준화 이전에 경기고·서울고 출신들이 잘나가던 시절에도 이런 싹쓸이는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반면 1급 이상 장·차관까지 14명의 외교부 요직 중 '인재의 산실'인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은 전무하다. 이 또한 외교부 출범 이후 처음이라 한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과 북미·북핵 라인을 배척한 이유를 외교부 사정에 밝은 인사에게 들어봤다.
 "철저한 보복 인사다. 이 정부 청와대는 장관을 지낸 반기문·송민순·윤병세를 특히 미워한다. 노무현 정부 때 중용했는데 정권이 바뀌자 배신했다고 여긴다. 당시엔 외교부 북미 라인이 국익을 앞세워 청와대 정책을 많이 반대했는데 그때는 청와대가 논리에 밀려서 맘대로 못했다. 이번에는 외교부 주류를 아예 배제하기로 작심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리 의혹에도 조국 장관을 임명해 불공정 인사란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비리 의혹에도 조국 장관을 임명해 불공정 인사란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과 권력 비리 수사 검사를 좌천한 검찰 인사 파동에서 유사한 현상을 이미 목도했다. 마찬가지로 국방부와 군 고위 장성 인사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이 정부 들어 발탁과 파격을 내세워 해군 출신 송영무, 공군 출신 정경두를 장관으로 연이어 중용했다.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알려진 학군(ROTC) 출신은 첫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일선 사단장 경험이 없는데도 9·19 남북 군사 합의에 기여해 군단장(수도방위사령관)에 발탁된 북한통도 있다.
 반면 국방부와 합참의 주요 엘리트는 진급에서 빠졌다. 군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이 정부는 육사와 육군 출신을 네 편이라 의심하기 때문에 소외시킨다"고 전했다. 용장(勇將)·지장(智將)·덕장(德將)이 아닌 '운장(運將)'들이 요직을 차지한다면 그런 군대가 어떻게 강군이 되겠나.

문재인 정부 들어 육사와 육군 출신 배제 인사가 잇따르면서 국방부와 군 내부에서는 인사 불만과 냉소가 넘쳐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을 마치고 청와대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들어 육사와 육군 출신 배제 인사가 잇따르면서 국방부와 군 내부에서는 인사 불만과 냉소가 넘쳐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을 마치고 청와대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청와대사진기자단]

 민간기업(삼성)에서 37년간 인사·조직 전문가로 활약한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에게 대안을 물어봤다.
 -인사의 대원칙이 있다면.
 "유능하고 경륜 있는 전문가를 써야 한다. 안 그러면 좋은 정책도 리더십도 안 생긴다. 한번 발탁한 인재는 믿고 맡겨야 한다. 유능한 관료를 불신하는 것은 국가 인재 낭비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인사인가.
 "네 편 내 편 구분 말고 최고(Best)를 써야지 내 편이라는 이유로 2, 3등을 쓰면 안 된다. 감동이나 파격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적의 인재를 썼는지가 중요하다. 의원직과 당적을  유지하는 장관을 임명하면 당과 정치 세력의 포로가 되기 쉽다."
 -이 정부 인사에 대해 말들이 많다.
 "인사권은 전리품이 아닌데 내 것으로 착각한다. 왕조시대와 달리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 인사권은 고유권한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는 민심을 따라야 한다.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는 인사는 강행하면 안 된다. 이 정부 인사는 진짜 전문가가 인사하는지 의문이 든다. 인재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남은 임기 인사를 충고한다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인사를 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을 주변국에서 G3(주요 3개국)로 만들기 위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맞는 인사를 해야 한다."

민간과 정부를 통틀어 '최고의 인사 전문가'로 불리는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최고(Best)의 인재를 골라 믿고 맡겨야 한다"면서 "인사는 인사권자의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민간과 정부를 통틀어 '최고의 인사 전문가'로 불리는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최고(Best)의 인재를 골라 믿고 맡겨야 한다"면서 "인사는 인사권자의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인사를 잘 못 하면 민심이 떠나고 결국 정권이 무너진다. 자고이래로 인사가 만사다. 인재학의 교과서라는 『변경(辨經)』을 보더라도 그게 만고의 진리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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