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분의 1 인력으로 요양병원…사무장 병원들 2조 챙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요양병원 대해부 〈하〉 

A씨는 2014년 의사 B씨의 병원을 인수한 뒤 B씨 명의로 요양병원을 열었다. B씨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A씨는 동생을 원무과장으로 앉혀서 의사 채용을 비롯한 경영 전반에 관여했다. 이 병원에서 약 3년 8개월 동안 18억원을 가로챘다.

인력기준 낮고 구급차도 필요 없어 #일일 정액 수가제로 수익도 안정적 #전문가 “시설·인력 기준 강화하고 #요양보험 적용, 사회적 입원 막아야”

이모씨는 지인 4명과 함께 2013년 8월 허위로 출자금을 내고 회의록을 작성해 의료생활협동조합 법인 등기를 마쳤다. 이 법인 이름으로 요양병원을 열었다. 의사·간호사 등을 고용해 진료했고, 지난해 2월까지 건강보험에서 291억원을 받아갔다. 가짜 생협 병원을 내세운 전형적인 ‘사무장 병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장 요양병원 적발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무장 요양병원 적발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요양병원은 의사와 비영리법인만 개설할 수 있다. 의료 행위에서 과도한 이윤을 챙기지 못하게 제한한다. 그런데 돈 벌려고 뛰어든 사무장이 의사를 내세워 병원 문을 연 뒤 진료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건보재정을 축낸다. 2009~2020년 307개의 사무장 요양병원이 적발됐다. 2조610억원을 타갔다. 전체 1500여개 요양병원의 약 19%가 적발됐는데, 일반 중소병원(5.7%)보다 훨씬 높다.

사무장 병원의 유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무장 병원의 유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의 타깃이 된 이유는 인력과 시설 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100병상 요양병원은 의사 2명, 간호사 6명, 간호조무사 11명이 있으면 된다. 일반병원은 의사 5명, 간호사 40명을 고용해야 한다. 요양병원이 4분의 1밖에 안 된다. 기준 병상도 요양병원이 6인실, 일반병원은 4인실이 원칙이다. 요양병원은 구급차나 수술실 같은 걸 갖출 필요가 없다.

요양병원은 의료 행위별로 수가를 매기는 게 아니라 하루에 정해진 수가를 받는다. 약 처방이나 처치 행위를 적게 할수록 득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정액 수가제가 사무장 병원 운영자에게 안정적 수익을 안긴다”며 “요양병원은 환자 확보에 이점이 있다. 가족이 단절됐거나 거처가 마땅하지 않은 환자는 병원에서 식사 해결하고, 냉난방 되고, 진료비 부담금 상한제 적용해 주니까 선호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소위 ‘사회적 입원’을 말한다.

요양병원과 일반병원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요양병원과 일반병원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한요양병원협회 추계에 따르면 환자의 30%가 사회적 입원 환자이다. 관절이 불편한 C씨는 딱히 아픈 데가 없는데도 요양병원 2곳을 전전했다. 자녀들이 돌보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 병원살이가 길어지면서 노쇠현상이 급속히 진행됐다고 한다. C씨는 장기요양 2등급을 받아서 오히려 요양원에 가야 할 환자다. 그런데 요양병원의 이미지가 낫다고 자녀들이 병원을 선호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환자가 섞여 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손덕현 회장은 “양쪽 환자의 30%씩이 바뀌어 있다”고 말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면서 요양병원을 정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요양원은 요양보험, 요양병원은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이상한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며 “요양병원에도 장기요양보험을 적용하고, 8인실 중심에서 3, 4인실로 바꾸고, 시설·인력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을 적용하면 장기요양 1, 2등급(예외적으로 3, 4등급)을 받지 못하면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입원을 막으면 사무장 병원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강광우·채혜선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