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대명사' 日도 오르는데 韓물가 OECD 꼴찌에서 3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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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최근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 대비)이 오랜 기간 저물가를 이어간 일본보다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그리스·포르투갈과 함께 최저 수준이다.

8월 물가 상승률 일본 0.3% vs 한국 -0.04% 

3일 OECD가 집계한 국가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를 기록했다. 같은 달 한국은 -0.04%였다. 한국은 8월에 이어 9월에도 물가가 마이너스(-0.4%)를 나타냈다.

20여년 간 장기 불황(1991~2011년)을 겪은 일본은 오랫동안 마이너스 물가가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물가 상승률이 -2.5%(2009년 10월)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과감한 통화 공급과 확장 재정을 추구한 '아베노믹스' 정책을 추진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상승 추세로 바뀌었다. 일본이 마지막으로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0.5%)을 기록한 때는 2016년 9월이다. 이후부터는 OECD 평균에는 미달하지만, 꾸준히 오르는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3~2014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보다 높았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아베노믹스 시행으로 일본 물가가 급등했다가 소비세 인상 여파 등으로 급락했다. 그러다 올해 3월 일본이 한국 물가를 역전했다. 급기야 8월에는 일본은 오르는 데 한국만 마이너스를 찍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해 11월부터 급락한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부터 9개월 연속 1% 이하 저물가 추세를 이어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 물가, OECD 꼴찌에서 3등…한국 뒤엔 그리스·포르투갈    

한국의 8월 물가 상승률(-0.04%)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3일 현재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공표한 회원국 36개국 중 34위다. 한국 뒤로는 2010년 전후 재정 위기를 겪은 포르투갈(-0.09%)·그리스(-0.17%)가 있다. OECD 평균과 격차도 더 벌어졌다. 지난 7월 한국 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2.1%)보다 1.5%포인트 낮았다. 8월에는 1.94%포인트로 격차가 벌어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마이너스 물가를 벗어났지만, 한국은 반대로 마이너스 물가로 진입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글로벌 저물가 속 韓 물가 특히 급락…수요 위축, 경기 부진 탓" 

저물가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OECD 평균과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 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7~10월 정점을 찍은 뒤 모두 하락 추세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Brexit)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성장성 둔화에 따른 수요 위축이 전반적인 글로벌 저물가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보호무역 강화는 국제 교역을 위축시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1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상품 교역량 증가율 전망치를 2.6%(올해 4월)에서 1.2%로 대폭 낮췄다. 여기에 세계 경제 성장세를 주도한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 경기도 나빠졌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1일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2009년 6월 이후 최저치인 47.8로 집계됐다. 금융정보업체 IHS마킷이 1일 발표한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9월 제조업 PMI 확정치도 2012년 10월 이후 최저치인 45.7로 집계됐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9월 PMI 지수도 41.7을 기록, 2009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저물가 현상을 무상교육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농·축·수산물 가격 하락 등 일시적인 국내 요인만으로 분석하는 정부 시각은 근시안적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 저물가 흐름은 글로벌 물가 흐름과 같이 가는 모습을 보인다"며 "특히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로 한국에서 유독 더 물가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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