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능" 보고 파문 영국대사, 트럼프 압박에 결국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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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가 10일(현지시간) 사임한다고 밝혔다. 최근 그가 비밀 외교 전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평가한 사실이 폭로됐다. [AFP=연합뉴스]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가 10일(현지시간) 사임한다고 밝혔다. 최근 그가 비밀 외교 전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평가한 사실이 폭로됐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서툴고 무능하다’고 깎아내린 사실이 폭로돼 '영·미 외교 비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킴 대럭 주미 영국 대사가 결국 사임했다. BBC는 10일(현지시간) "사이먼 맥도날드 영국 외무부 사무차관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대럭 대사의 사의를 수락했다"고 전했다.

비밀외교전문서 "서툴고 무능하다" 평가 #영국 데일리메일이 폭로, 트럼프 격노해 #사실상 경질 요구에 영국 대럭 대사 두둔 #공방전 오가다 10일 사직서 제출해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대럭 대사는 사직서에서 "외교 기밀문서가 유출된 뒤 내 직위와 임기에 대해 많은 협의가 있었다"며 "이제 이런 추측들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금 상황은 내가 주어진 역할을 하기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대럭 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전문에서 대럭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서툴고 무능하다" "대통령이 분열을 조장한다"고 평가했다. 또 "백악관은 전례 없이 망가졌다. 대통령은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끝낼 것"이라며 "이 정부가 더 정상화되고, 덜 무능하고, 덜 예측 불가하고, 덜 분열되고, 외교적으로 덜 서툴게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고 적었다. 해당 전문들은 2017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멍청한 사람"이라며 "우리는 그의 열혈 팬이 아니다"고 사실상 영국에 대럭 대사의 경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전문의 내용은 대사의 개인 의견이지 영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도 "솔직한 보고는 대사의 정당한 직무"라고 경질 요구를 거부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이 7일 킴 대럭 주미 영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서툴다고 했다"는 기밀 외교전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트위터 캡처]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이 7일 킴 대럭 주미 영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서툴다고 했다"는 기밀 외교전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트위터 캡처]

이런 영국 정부의 반응에 트럼프는 격분했다. 그는 이튿날 트윗에서 "나는 그 대사를 모르지만, 미국은 그를 좋아하지도 않고 평판도 좋지 않다"며 "우리는 더는 그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폭탄 선언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최고 동맹국인 영국의 자국 주재 대사를 '외교상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대럭 대사를 두둔한 헌트 장관을 향해서도 "멋진 영국에게 좋은 소식은 그들이 새로운 총리를 곧 갖게 된다는 것"이라고 트윗에 썼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후임 자리를 놓고 헌트 장관과 경쟁 중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을 에둘러 칭찬한 셈이다.

트럼프는 퇴임을 앞둔 메이 총리도 공개 비난했다. 그는 "나는 영국과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다루는 방식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메이 총리가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메이 총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해줬지만, 그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는 "영국이 유럽연합(EU)과 공정한 합의를 못 한다면 이혼 합의금(EU 분담금) 390억 파운드(약 58조 원)는 내지 않고 그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공방이 있고 나서 미국 정부는 대럭 대사를 사실상 찬밥 취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럭 대사는 미 재무부가 주최한 카타르 국왕 환영 만찬 행사에 초대받았지만, 당일 갑작스럽게 초청 취소 통보를 받았다. 대럭 대사는 사직서에서 "내 임기는 올해 말까지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책임감 있는 행보는 신임 대사 임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토로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김상진·김다영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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