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의 북핵 엇박자에 제동 건 주한 미국대사 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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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는 2일 “우리(미국)가 북한과 만나는 목적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CVID) 비핵화가 필요하며, 이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분명하게 못 박은 언급이다. 시점도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가 ‘선 핵폐기 후 보상’이 골자인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한 직후에 나왔다. 비핵화의 범위와 방식을 놓고 한·미 간에 틈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봐야 한다.

정부는 지난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 날짜만 정했을 뿐 의제(비핵화)는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미국 입장에선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비핵화는 건성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그렇게 되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홀로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런 만큼 내퍼 대사는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확실하게 요구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이견은 대북제재 전선에 균열을 초래하고 대북 협상력도 약화시킬 따름이다. 마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북한의 핵 완성까지 9개월~1년 남았다”고 말했다. 1년 안에 북핵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군사행동을 포함한 초강경 압박으로 돌아설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걸릴 ‘단계적 비핵화’에 매달려선 안 된다. 단기간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굳건한 한·미 공조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결심을 끌어내야 북·미 정상회담도 성공할 수 있는 만큼 북한이 ‘선 핵폐기’를 수용하도록 능동적인 전략을 펼쳐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