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정책숙려제 한다던 교육부의 조령모개식 대입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학입시 정책의 생명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주요 사항을 3년 전에 예고하도록 한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최근 졸속으로 대입 정책을 변경해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건 이런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처사란 점에서 개탄스럽다. 교육부는 지난 10년간 수시모집 확대 기조를 유지해 오다 얼마 전 갑자기 주요 대학에 정시모집 확대를 요청했다. 현재 고2가 치르는 2020학년도 대입전형 계획 제출 마감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서다. 이와 함께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라고 각 대학에 권고했다.

교육부의 이번 행태는 절차를 무시한 밀실 행정이란 점에서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대입처럼 중요하고 예민한 정책을 변경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공문을 보내는 등의 정상적 절차를 생략한 채 차관이 총장·입학처장을 만나거나 전화로 입시 변경을 요청한 것도 어불성설이다. 성급하게 대입 정책을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교육부의 오락가락 행보도 문제다. 정시 확대는 수능 비중 강화를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변별력 약화가 뻔한 수능 절대평가를 추진해 온 것과 상충한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도 마찬가지다. 수험생들 입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다.

더 우려스러운 건 교육부의 정책 뒤집기가 주요 사안마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올 초에도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를 무턱대고 추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했다. 그때 내놓은 게 ‘정책숙려제’다. 앞으론 국민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고해성사다. 이번 조령모개(朝令暮改)식 대입 정책을 보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교육부는 지난 주말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육부를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 걸 비상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