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강제 개봉’ 김명수 대법원장 고발 사건 수사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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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명수. [뉴시스]

김명수. [뉴시스]

‘판사 뒷조사 문건(블랙리스트)’ 조사 과정에서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발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일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앞서 자유한국당 사법개혁추진단(단장 주광덕 의원)은 지난달 28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회 위원 등 7명을 비밀침해,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중앙지검, 블랙리스트 조사 관련 #수사대상 판사가 1차장의 부인 #2차장 산하 공공형사부에 배당 #“사법부 수장 조사, 많은 고려 안 해”

국회의원이 대법원장을 고발한 전례가 없는데다 수사의 결론이 어느 방향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사건 배당 단계부터 “평소와 다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일반적으로 고소·고발 사건을 1차장검사 산하 형사부서에 배당해 왔다. 실제로 판사 뒷조사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법원행정처 전 간부들을 고발한 사건 등(총3건)은 모두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수사 중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2차장검사 산하인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했다.

표면적으로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의 부인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발된 7명의 추가조사위원 중에는 윤 차장검사의 부인인 최은주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사건 관계인이 가족이다. 조사 과정에서 껄끄럽거나 민망한 상황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수사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윤 차장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부서에 배당했다는 얘기다.

검찰 지휘부의 복잡한 고민도 엿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올해는 청와대가 김 대법원장을 통해 ‘사법개혁’을 본격화하는 시기다. 역시 문 대통령이 낙점한 문무일 검찰총장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칫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사법개혁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인 셈이다.

이런 민감성을 의식한 듯 검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주광덕 의원 등 고발인 조사 는 검토를 해보고 진행할 것”이라고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사법부 수장에 대한 조사인 만큼 고려해야 게 많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다 보면 수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판사들 컴퓨터도 검찰이 압수해 볼 수 있는 건가.
“그와 관련된 사건은 이미 지난 해 접수된 게 있다. 다른 부서에서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 요지는 추가조사위가 최근 김 대법원장의 묵인 하에 판사 뒷조사 문건이 들어 있다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전·현직 판사 4명)의 컴퓨터를 당사자들 동의없이 강제 개봉한 것은 형법상 비밀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개봉한 PC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현직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사용했던 하드디스크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던 지난 4월 법원 진상조사위는 이 문제를 조사한뒤 사실 무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고, 이 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 대법원장이 지난달 재조사를 지시했다. 추가조사위는 지난달 27일부터 해당 판사들의 동의 없이 컴퓨터 파일들을 복원해 그 내용을 확인하는 강제 조사에 들어갔다. 사생활 침해 등 논란을 고려해 개인적 문서와 이메일은 제외하고, ‘사법행정과 관련해 작성된 문서’만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 보다 더 넓은 범위의 자료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이 형법을 어겼는지 여부는 결국 관련 PC에 담긴 내용을 확인해야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로펌 변호사는 “경우에 따라 사법부 자체 조사가 아닌 검찰 수사에 의해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며 “검찰이 어떤 방향으로 수사하느냐에 따라 파장이 클수도, 작을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일훈·문현경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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