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핵 규탄 유엔 결의안에 기권, 신중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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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최근 북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 2건을 기권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1 위원회에서 열린 ‘핵무기 전면 철폐를 향한 공동의 행동’을 주제로 한 결의안 L35호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하여’란 결의안 L19 투표에서 모두 기권했다고 한다. 이 두 건의 결의안에는 북한이 그간 실시해온 핵폭탄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력히 규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외교부는 “특정국(일본)의 원폭 피해 문제, 또는 ‘핵무기 금지조약’에 관한 내용을 너무 강조해 기권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결의안에 대해서는 2015년 이래 똑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덧붙였다. 결의안 원문을 읽어보면 “피폭 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세계 지도자들이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국제기구의 구호를 적극 지지한다” 등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는 인상을 지나치게 강조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2년간 기권해 왔다는 이유로 그저 똑같은 입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의 북핵 상황은 수년 전과는 비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이 군사적 행동마저 불사하겠다는 게 작금의 형국이다. 언제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몰린 터이다. L35호에 반대해 온 미국이 올해에는 입장을 바꿔 찬성으로 돌아선 것도 엄혹한 상황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가뜩이나 한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란 비판이 국내외에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일로 국제사회의 오해를 받을까 걱정된다. 정부는 이번 일을 거울 삼아 앞으로 주변 상황 변화를 신중히 살피는 한편 관행대로 일을 처리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