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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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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앙일보 <2017년 10월 22일 34면>
신고리 재개 청와대 입장 표명, 내용·형식 모두 실망스럽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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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권고에 대한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만인 22일 내놓았다. 해당 원전의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되,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원전도 수명 연장을 하지 않는 등 탈원전 정책은 변함없이 이어간다고 천명했다. 약속한 대로 위원회 권고를 존중해 지지층에 대승적 수용을 촉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입장 발표의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국민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듯해 유감스럽다.

우선 비현실적인 대선 공약을 내세웠다가 파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점과 공사 중단으로 예산 낭비를 초래한 과오 등에 대해 유감 표명 한마디 없었다. 새 정부의 무리한 5·6호기 공사 중단 조치로 협력사 피해액이 1000억원에 달하고, 공론화위가 석 달간 쓴 활동비도 46억원에 이른다. 업계와 학계,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이 싸우며 유발한 사회적 갈등 비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공론화위가 20%포인트 가까운 큰 격차로 공사 재개 쪽 손을 들어준 건 짓고 있는 신고리 원전 폐기에 무리하게 나선 새 정부 독선에 대한 국민적 제동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메시지의 형식도 실망스러웠다. 소통을 강조해온 대통령인 만큼 국민 앞에 나와 솔직한 입장을 밝힐 것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1800자 분량의 ‘서면 입장’을 청와대 기자단 사이트인 ‘e춘추관’에 게재했다. 같은 날 열린 이북 도민 체육대회까지 다녀간 대통령이 이토록 중차대한 국가 대사에 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국민이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낸 탈원전에 대해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를 명분 삼아 계속 밀어붙이려는 정부 태도다. 원래 공론화위의 역할은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의 판단이었지 원전 정책의 장기적 향배 결정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쳤는지도 의문이다. ‘원전 축소’가 53%의 찬성을 얻었다지만 ‘원전 유지·확대’가 45%에 달한 점 역시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이날 가동 중단 대상으로 언급한 월성 1호기는 재판 계류 중인 사안이라 성급한 느낌이다.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으로 설계수명을 늘려 운전기간을 2022년 11월로 연장하자 시민단체가 취소 소송을 내놓고 있다. 자칫 정부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정부는 “탈원전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공론화 과정이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그런 경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론에 부치더라도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과 신재생이 상당 기간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국내 원전은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 월성 4호기까지 10기의 설계수명이 끝난다. 탈원전을 전투하듯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수십 년 기약할 에너지 전환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한겨레 <2017년 10월 23일 27면>
“원전 축소 말라”는 야당·보수언론의 공론조사 왜곡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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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은 명쾌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앞으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라는 것이다. 또 공사를 재개할 경우 안전기준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국민을 대표한 시민참여단의 결론은 이처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입장문을 내어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며 ‘공사 중단’ 지지자들에게 대승적 수용을 부탁했다. 정부 의지와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국민의 뜻인 만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며 “다음 정부가 탈원전의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 또한 공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국민의 뜻이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언론은 “국민이 탈원전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며 아전인수식 주장을 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는 대대적으로 부각하는 반면, ‘원전 축소 권고’는 무시한다. 또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와 관련해 “월권을 했다”고 비난한다. 공론화위의 건설 재개 결론을 떠받들면서 공론화위 활동 자체는 폄훼하는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의견만 골라 먹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야당은 ‘대통령 사과’ 등 정치공세까지 펴고 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직권남용에 대해 관련자 문책과 함께, 모든 법적·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을 공론화위로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 정책에 대해 국민 의견을 묻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론화위 활동이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현안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동떨어진 주장이다.

이번에 시민참여단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반대 의견까지 포용하는 상생의 해답을 내놨다. 또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을 우리 사회에 제시한 것이다. 정치권부터 먼저 배워야 할 자세다.

논리 vs 논리
새 정부의 독선에 대한 국민적 제동 vs 대통령 사과 요구는 정치공세일 뿐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대한민국 전체 시민을 대표한 471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는 공사 재개 59.5%, 중단 40.5%로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도 입장문을 통해 공론화위원회의 뜻을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탈(脫)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도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신고리 5·6호기 외에 신규 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고 설계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의 가동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한겨레와 중앙은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과정과 문 대통령이 결론을 수용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겨레는 “학습과 토론을 통해 반대 의견까지 포용하는 상생의 해답”을 내놓은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을 우리 사회에 제시한 것”이라며 높은 점수를 준다. 중앙 또한 문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위원회 권고를 존중해 지지층에 대승적 수용을 촉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이후의 논의에 있어서는 두 사설의 입장이 날카롭게 갈린다.

중앙은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 결정을 “새 정부 독선에 대한 국민적 제동”으로 받아들인다. 현행법에는 안전이나 절차상의 문제 외에는 원전 공사를 중단하거나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건설 중단 지시를 내려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 중앙은 문 대통령이 “이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하게 질타한다.

반면 한겨레는 대통령 사과 요구 등은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원전 건설 중단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공약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국민에게 묻고 지속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정당한 통치행위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측에 대해 한겨레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 정책에 대해 국민 의견을 묻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냐고 되묻는 이유다.

곧이어 중앙은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를 명분 삼아” 탈원전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공론화위원회의 의제는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였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원전 정책의 지속 여부까지 논의해 결론에 넣었다. 하지만 원전 축소와 탈(脫)원전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 정부가 ‘원전 축소’ 방안에 53%의 찬성이 나왔다는 이유로 유지·확대 의견 45%를 무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앙의 지적에 대해 한겨레는 “아전인수식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김지형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는 원전 정책과 구분하기 어렵기에 위원회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앞으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사실 공사 진척률이 29%에 이르고 비용도 1조6000억원이나 투입된 공사를 갑자기 중단하는 데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탈원전 정책과 눈앞의 현안인 건설 포기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듯 두 사설의 입장은 완전히 다른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설의 견해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완성되는 시점은 2019년 가동될 신한울 2호기가 수명이 다하는 2079년이다. 건설이 재개된 신고리 5·6호기까지 하면 208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탈원전 상태가 된다. 이번 정부 들어 새롭게 가동되는 원전 또한 3기에 이른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원자력 기술 수준을 넘어 보다 안전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방향’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에 다른 의견이 없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전통적인 보수는 법질서를 존중하고 절차적 정의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곤 한다. 반면 전통적인 진보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상(理想)과 국민의 뜻을 앞세운다. 이렇게 보면 두 사설의 격한 논쟁은 건강한 진보와 보수가 벌이는 발전적인 토론으로 볼 수 있을 듯싶다.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공론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두 사설은 정책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펼치는 논리의 뿌리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