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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원회와 숙의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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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란 정치나 정책 현안들을 시민 사이의 공정하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곧 정의’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회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올 정책들도 표를 많이 얻은 측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 아닌 ‘공익’의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보고 평가한다. 이를 위해서는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충실하게 주어져야 하고, 대립하는 주장들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하며, 참여자들이 사회 전체를 대표할 만큼 다양해야 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결론은 내세워진 주장이 설득력 있는지에 따라 가려져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긴 논의 끝에 건설 재개 59.5%, 중단 40.5%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건설 재개와 중단의 비율이 오차범위 안에 머물 정도로 근소한 차이만 보였다. 진지한 학습과 많은 토론 기회, 충분한 숙의 기간을 거치면 ‘민의(民意)’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