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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태환에게 돌을 던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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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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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
스포츠부 기자

8일 리우 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에 출전한 박태환(27)은 레이스를 마친 뒤 전광판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8명이 겨룬 예선에서 1분48초06의 기록으로 최하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전체 47명 가운데 29위에 머문 박태환은 16명이 치르는 준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박태환은 전날 400m에서도 전체 10위로 예선 탈락했다. 400m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자신의 주종목이고, 200m 역시 베이징과 런던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던 종목이다. 이틀 연속 예선 탈락한 박태환은 결국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레이스에서 꼴찌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겠더라. 이런 내 모습에 적응이 안 된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리우 올림픽은 박태환의 수영 인생이 걸린 레이스다. 2014년 9월 도핑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양성반응을 보인 박태환은 그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메달 6개(은1·동5개)를 박탈당했다.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는 18개월 동안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 3월 징계가 풀린 뒤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해 4개 종목(자유형 100·200·400·1500m)에서 올림픽 출전 자격인 A 기준 기록을 넘었다.

그러나 박태환은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 규정(3년간 대표 선발 제한)에 가로막혔다. 그는 “명예 회복의 기회를 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했지만 대한체육회의 입장은 단호했다. 결국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가는 법적 공방 끝에 힘겹게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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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형 200m 예선 탈락 후 박태환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겠더라”고 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올림픽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 징계가 풀렸다. 그러나 ‘박태환 전담팀’의 관리 속에서 4년 동안 체계적으로 준비했던 이전 대회와 리우 대회는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박태환에게 리우 올림픽은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2년 만에 치르는 국제대회다. 박태환이 법정 싸움을 벌이면서 나이를 먹는 동안 세계 수영은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박태환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과욕이었다.

박태환은 수영 불모지에서 탄생한 국민적 영웅이다. 도핑 파문을 일으켰지만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박태환에겐 이제 10일의 100m와 13일 1500m 레이스가 남았다. 메달을 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메달에 대한 기대는 접을 때다. 좋지 않은 성적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응원했으면 한다.

김원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