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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운동도 없이 개최한 여수바다수영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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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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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는 2008년부터 해마다 8월 초에 ‘여수 가막만배 전국바다수영대회’가 열린다. 대한수영연맹이 공인한 대회로 올해가 9회째다. 매년 이틀 동안 열리는 대회에는 수영 동호인 800여 명이 여수를 찾는다. 하지만 이틀 일정으로 853명이 참가한 올해 대회는 첫날인 6일 취소되는 파행을 빚었다. 대회에 참가한 강모(64)씨와 조모(45·여)씨 등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강씨 등은 이날 낮 12시50분쯤 1㎞ 종목에 참가했다가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을 지켜본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경도 수영연맹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이번 대회를 주관한 전남수영연맹과 여수시수영연맹의 응급시스템은 그럴듯했다. 경기가 열린 가막만 해상 주변에는 안전요원 78명과 제트스키 등 안전기구 27대가 배치됐다. 해상에는 해경 경비정 2척과 구조보트도 떠 있었다.

하지만 세부 경기 진행은 허술했다. 주최 측은 기온이 30도를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경기를 진행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준비운동조차 하지 않았다. 수영연맹 측은 “대회 진행자가 참가자들에게 간헐적으로 ‘준비운동을 해달라’는 말은 했다”며 “다만 선수들이 맨발인 탓에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한데 모아놓고 몸을 풀지는 못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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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여수 바다수영대회에 참가한 동호인들이 폭염 속에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사진 여수해경]

안전사고 대책도 미흡했다. 폭염 속에 첫날 대회에 570명이나 참가했다. 대회 규모는 큰데 구급차는 한 대만 배치했다. 이 때문에 먼저 의식을 잃은 강씨를 병원으로 싣고 가는 사이에 조씨가 쓰러졌고, 조씨는 119가 도착할 때까지 20분 넘게 방치됐다. 대회 주변에 한 대뿐이던 심장 제세동기도 강씨를 태운 구급차에 실려 있어 조씨에게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출발시간을 갑자기 앞당긴 것도 문제란 지적이다. 당초 30분 단위로 3개 그룹을 순차적으로 출발시키도록 예정된 것을 5분 단위로 출발시켰다. 한 참가자는 “선수들이 한꺼번에 코스에 몰리면서 서로 부닥쳤다”고 전했다.

해경은 안전관리상 문제나 출발시간 준수 여부 등을 캐고 있다. 하지만 폭염 등 이상기후 때 대회 중단 여부 등을 규정해 놓은 매뉴얼이 없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한 여수시수영연맹 간부는 “대회를 치르면서 날씨나 온도 같은 제한사항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행사 진행 때문에 피서철에 바다로 몰려온 국민 안전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안전 매뉴얼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