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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물놀이 희생자 줄인 ‘홍천강 구명조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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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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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내셔널부 기자

“낚시꾼 옆에 흰색 옷 입은 학생, 구명조끼 입으세요. 위험합니다.” 지난 3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밤벌유원지. 망원경으로 강을 둘러보던 안전요원이 다급히 확성기를 들더니 상류 쪽을 향해 안내 방송을 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피서객은 200여 명. 이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었다. 이 일대는 ‘마(魔)의 홍천강’이라 불리던 곳이다. 안전요원 김준태(51)씨는 “과거 이곳에선 1년에 2~3명씩 사고로 숨졌는데, 대부분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홍천 일대에서는 구명조끼 착용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런 변화는 물놀이 사망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9년 물놀이 관련 사고로 홍천군에서만 18명이 숨졌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64명이 목숨을 잃었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홍천군은 2013년부터 강과 하천에서 구명조끼를 무료로 빌려주기 시작했다. 현재 4200개의 구명조끼가 36곳에 마련돼 있다. 시행 첫해 물놀이 관련 익사 사고가 4명으로 급감했다. 2014년 이후에도 매년 2~4명 수준으로 줄었다.

홍천군 자치행정과 오흥택 계장은 “홍천에서 물놀이할 때 구명조끼 착용은 자동차를 탈 때 안전벨트를 의무적으로 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효과를 확인한 홍천군은 구명조끼 의무 착용 법제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홍천군은 지난달 20일 법제화 제안서를 강원도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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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면 밤벌유원지에서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점검하는 홍천군 공무원. [사진 박진호 기자]

노승락 홍천군수는 “구명조끼를 입으면 급류에 휩쓸려도 구조될 시간을 벌 수 있다”며 “바다가 아닌 강에서도 구명조끼는 생명조끼”라고 말했다.

반면 전국의 다른 유명 피서지에서는 원시적인 익사 사고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3~2015년 3년간 물놀이 익사자는 97명이었다. 다슬기 채취 사고 등이 포함되지 않은 집계라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사자는 경기도 가평군(9명)이 가장 많았고 경남 산청군(7명), 강원도 강릉시(5명) 순이었다.

더 큰 문제는 사망자의 30%가량이 0~19세라는 점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265명이 숨졌다. 출산 장려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매년 수십 명의 아이와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 셈이다. 강원대 재난관리공학전공 백민호 교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장비 착용 의무화, 구조인력 보강 등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천군의 작은 노력을 다른 지자체들이 배울 만하다. 정부와 국회도 생명을 살릴 법제화를 서두르면 좋겠다.

글, 사진=박진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