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심리학으로 시작 … 수학 거쳐 의학으로 끝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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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선 위험하다고 하고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감염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체 어느 쪽 말을 믿어야 되는 겁니까.”

 6일 서울시의 한 보건소 앞에서 만난 40대 시민은 기자에게 대뜸 물었다. 딸의 손을 잡고 보건소를 찾은 그는 “열이 있는 것 같아 체온을 재보러 왔다”고 말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을 놓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해석이 엇갈리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에 현장의 혼선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바셀린을 코에 바르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 이 같은 갈등과 혼란이 이어지면 감염병을 넘어 사회적 아노미(anomie·사회 규범의 동요 및 붕괴로 인한 무질서)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시민들에 각인돼 있던 제도에 대한 불신이 메르스를 통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희대 김중백(사회학과) 교수는 “모순된 상황이 반복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수록 아노미 가능성은 커진다”고 말했다.

 정부가 7일 메르스 환자가 경유한 병원 24곳을 공개하면서 미확인 정보 유통이 잦아들고 있지만 아노미 상태로 전개될 수 있는 불씨는 여전하다. 전병율(전 질병관리본부장)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병은 심리학으로 시작해 수학을 거쳐 의학으로 끝난다”며 “이런 특성을 대책에 반영하지 않으면 감염병에 대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감염병 확산 초기에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국민의 심리를 잘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감염병 심리학은 심리적 안정감과 공포심 사이에서의 줄타기다. 심리적 안정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개인 위생이 소홀해지면서 감염병 확산 방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포감을 조성하면 경제 위축과 패닉(공포) 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전병율 교수는 “정부를 대표하는 당국자가 언론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며 “메르스 사태 초기에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에게 구체적인 바이러스 차단 방법을 설명한 뒤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심리적 설득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상황이 악화돼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중반기엔 개인 위생 강조와 함께 수학적 분석을 통해 버스터미널·지하철역 등 사람들이 몰리는 허브(hub)를 차단해 전파력을 떨어뜨려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백신 개발·보급과 함께 군 의료진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한 의학적 대응이다.

 ‘시그널의 일관성’은 감염병과 싸우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김중백 교수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심리적 불안감만 조성될 뿐”이라고 말했다. 7일 오전 최경환(국무총리 직무대행) 경제부총리가 “아직 지역사회 확산은 되지 않고 있다”고 한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 시간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서울병원을 통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상당하다”고 했다. 이러한 시그널의 차이는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잘 먹히지 않고 있는 이유다.

 동국대 이관(예방의학) 교수는 “정부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담화 방식보다 국민의 눈높이와 감정을 고려한 호소문 방식의 대국민 설득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미우라 히로키(三浦大樹)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때 2만 명이 사망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던 것은 사회적 회복력(resilience)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회복력의 핵심은 정부·지자체·국민의 신뢰와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글=강기헌·윤석만 기자 emckk@joongang.co.kr
사진=송봉근·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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