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은 조용하게 … 준비·과정 없는 통일은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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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을 열겠다”고 하자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1일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지도자들의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결실로 이어지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역대 통일부 장관들은 ‘과정’과 ‘준비’ 없는 통일은 장밋빛 환상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대 장관들이 제시한 남북관계 개선의 5대 해법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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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외교 선택지를 늘린다는 각오로 임하라”=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장관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국 일변도의 외교와 경협에 부담을 느껴 국제사회 진출과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려는 모습이 1일 발표된 신년사에 반영됐다”며 “북한이 전향적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미국도 반대하지 않는 만큼 어느 정권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에 좋은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외교가 빈약해진다”며 “정부가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논리를 만들어 국제무대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전 장관도 “남북대화가 활발할 때는 미국이나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 주요 인사들이 수시로 찾아와 북한 문제를 상의하거나 문의를 해왔다”며 “남북관계를 잘 활용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②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추진하라”=정 전 장관은 “북한은 우리 측의 제안을 수용하려다가도 먼저 공개되거나 의도가 알려지면 깨는 경향이 있다”며 “정말 성과를 내려면 조용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란 점에서 저쪽(북한) 정권의 체면을 세워줘 가면서 우리의 대북 지원이나 교류협력을 심화시키고 활성화해 북한 주민들의 민심이 남쪽으로 넘어 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의 정상외교에서도 양측이 합의하기 전까지 함구하는 관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③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하라”=남북교류 중단을 골자로 하는 5·24조치가 남북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이를 먼저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 전 장관은 “별 효과가 없는 5·24조치 해제를 위해 대통령이 결심하기 어렵다면 참모들이 나서서 남북교류를 확대함으로써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통일담론에 불을 지피고 통일의 유용성을 환기시킨 것은 평가한다”며 “하지만 평화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황홀한 미래상만 강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④ “중국과 러시아를 활용하라”=정 전 장관은 “집권 3년이 지나면 남북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올해가 골든타임이란 얘기다. 정 전 장관은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9일 남북대화를 제안했고 김정은도 정상회담을 언급한 만큼 본격적인 답안지 작성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대화의 진전과 상관없이 민간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이미 연결된 남북철도를 활용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행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⑤ “민간을 활용해 승수효과를 내라”=류우익 전 장관은 “현 시점에서 남북 간 신뢰를 쌓고 실질적인 통일을 준비하는 길은 인도적 지원”이라며 “정부가 민간 대북지원단체 등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면 상당한 승수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인덕 전 장관은 “5·24조치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며 “민간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민간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 외교안보팀장, 정용수·유지혜·유성운·정원엽·위문희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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