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애플과 비슷 … 삼성전자, 이겨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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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닝 쇼크’가 전해진 8일 정작 삼성전자 주가는 0.23% 올랐다. 시장에선 “올 것이 왔다”는 비관과 “애플도 거쳤던 성장통”이란 낙관이 엇갈린다. 비관론은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에 주목한다. 지난 2~3년간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정보기술(IT) 산업은 성장의 기대가 꺾인 한국 증시의 버팀목이었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홀로 상장사 이익의 절반을 벌어들였다. 지나친 독주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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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선두 주자마저 원화 강세,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 점차 힘이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이후’를,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 이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대표 수출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라면서 “앞으로 나올 대기업들의 실적도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7조2000억원은 올 1분기(8조4900억원)보다 15.19%, 지난해 같은 분기(9조5300억원)보다 24.45% 줄어든 것이다. 영업이익이 8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2년 2분기(6조4600억원) 이후 처음이다. 매출도 쪼그라들었다. 2분기 매출액 52조원은 1분기(53조6800억원)보다 3.13%, 지난해 같은 기간(57조4600억원)보다 9.5% 줄어든 수치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한 건 9년 만에 처음이다. 희비의 정점엔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연 주역이었지만 이를 다시 7조원대로 끌어내린 악역으로 돌변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가 속한 IM부문은 근래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도맡아 왔다. 증권사들은 IM부문의 영업이익이 6조원대에서 2분기에는 4조원대로 떨어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중국 시장에서 현지 업체의 공격적인 가격 경쟁으로 재고가 쌓였다”면서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써 실적이 약세를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올 3월 말 시장에 나온 갤럭시S5의 빛을 바래게 만든 것도 이 재고 부담이었다는 설명이다. 스마트폰의 부진은 다른 사업부의 실적에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줬다. 스마트폰 부품을 대는 디스플레이, 시스템LSI 부문의 매출과 수익성도 떨어졌다. 여기에 원화 강세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같은 가격의 제품을 수출해도 원화로 환산한 매출과 이익은 줄어든다.

 3분기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브랜드 충성도에선 애플에 치이고, 가격에선 중국 업체에 밀리는 구조적 문제가 쉽게 풀리기 어려워 보여서다. 아이엠투자증권 이민희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는 데다 중심축도 중국 업체들이 경쟁력이 있는 중저가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어 삼성전자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증권사는 최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170만원에서 143만원으로 떨어뜨렸다. IBK투자증권도 이날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7조9000억원에서 7조6000억원대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전자의 부진에 다른 수출 대기업들의 2분기 실적 전망도 덩달아 어두워지고 있다. 삼성증권 유승민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 실적에서 드러났듯 원화 강세의 악영향이 예상보다 크다”면서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실적 전망치도 하향 조정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원화 가치가 달러당 10원 오를 때마다 국내 상장사의 주당순이익(EPS)은 평균 1% 가까이 줄어든다. 이는 원화 절상기였던 2006년 조사 때(-0.3%)보다 더 큰 폭이다. 2000년대 중반은 신흥국이 고속성장을 하던 시기여서 수익성 감소를 수출 물량 증가로 상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렇지만 온갖 악재에도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반등한 건 시장엔 아직은 낙관론이 건재하다는 방증이란 반론도 나온다. 우선은 ‘어닝 쇼크’가 미리 주가에 반영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달 4일 149만5000원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3.4% 떨어져 130만원 아래로 밀렸다. 여기다 3분기 이후엔 삼성전자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다. 재고를 대부분 털어낸 만큼 신작 갤럭시S5 판매에 주력할 수 있는 데다 태블릿과 노트, 스마트시계를 중심으로 한 웨어러블 기기가 ‘3각 편대’가 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분기에 비해 원화 강세가 주춤해지고, 메모리 반도체도 성수기에 접어들며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부분 증권사들도 주가가 추가로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같이 9조~10조원대의 분기별 영업이익을 거두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적이 완만하게나마 나아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다만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선 삼성전자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600억 달러(약 60조7000억원) 넘는 유보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삼성 임원진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페리캐피털, 약트만애셋매니지먼트, 아티잔파트너의 내부 인사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다. 모두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로 기업 주식에 투자해 중·단기 수익을 내는 걸 목표로 한다. 현금을 쌓아두기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거나 배당률을 높이는 등 주가를 관리하라는 얘기다. WSJ는 “삼성전자 처지는 2년 전 애플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조민근·조현숙·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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