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몇 살부터, 임금 조정은 … 숙제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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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 증권사의 부장인 박모(52)씨는 “만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것은 내 나이 또래에겐 최고의 굿 뉴스(좋은 소식)”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잡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회사 정년은 만 58세이지만 대부분은 55세 전에 회사를 나갔다. 그는 “한 달에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만 250만원이 넘는다”며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둘째는 빚을 내서 대학을 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50대 초반의 한 중견기업 인사·노무 담당 부장은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정년 연장은 회사에 부담이 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정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 아니냐”며 “노후 준비를 못 한 주위 동료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여야가 추진하고 있는 만 60세 정년 의무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국내 산업·노동계는 물론 근로자와 일반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평균 정년은 58.4세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가 실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53세로 미국(65.8세), 일본(63세), 유럽(61.8세)보다 빠르다. 노동계는 “법안이 시행되면 실제 정년이 최소 2년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년이 연장되면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숭실대 정무성(사회복지학) 교수는 “정년 연장을 통해 베이비부머층을 안정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론 득이 될 것”이라며 “고령층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이들을 위한 산업이 발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2008~2010년 정년을 연장한 37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신규 채용인원은 평균 4%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급격히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이 신규 채용을 주저하면서 세대 갈등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정 교수도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하고 기업 조직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놓고 일어날 수 있는 노사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과제다. 정년은 만 60세로 연장되지만 몇 살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을 어떻게 조정할지 등은 노사 협상을 통해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과 노조가 상생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근무기간에 따른 임금 상승이 월등히 높은 만큼 이런 임금 체계를 정년 연장에 맞게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이지만(경영학) 교수는 “정년 연장 의무화는 정부의 복지 부담을 기업이 가져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년 연장을 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 지원을 확대하고 노사 갈등을 풀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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