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은밀한 일' 목격한 그들, 유혹에 빠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DY랜드건설 대표 이동율씨의 운전기사 최모(44)씨가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행 운전기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씨는 이씨가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돈 보따리를 건네주는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뒀다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편지를 보냈던 당사자다. 이는 최 전 위원장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 말고도 2002년 ‘최규선 게이트’, 지난해 피죤 이윤재 회장의 청부폭력 사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수행비서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등에도 모두 운전기사가 등장했다.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을 10년 가까이 수행했던 운전기사 김모(52)씨. 그는 25일 본지 기자와 만나 “회장님이 사모님보다 더 오래 함께 지내는 사람이 저 같은 운전기사”라며 “기사가 은밀한 일까지 알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흔히 기사는 운전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서일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는 게 김씨 얘기다. 김씨는 “오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아야 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전부 오너 기분과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를 ‘심기(心氣)보좌’라고 한단다. 김씨는 운전기사들이 철칙으로 삼는 것이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되자’는 것이라고 했다.

 기사 일을 하는 동안 비리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냐고 묻자 김씨는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삶”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수행 운전기사가 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기업 임직원의 운전기사 자리는 평균 경쟁률 500대 1을 뚫어야 하고, 연봉은 28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운전실력은 물론이고 주변 인맥도 탄탄해야 한다. 일부 기업체는 선발 때 회사 설립일·오너의 생년월일 등과 지원자의 사주를 맞춰보기도 한다. 김씨는 “나는 취직할 때 413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는데 그 전엔 사주가 안 맞아서 떨어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너의 기분을 거스르면 바로 퇴출. 김씨는 “급브레이크를 한 번 잘못 밟았다가 잘린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관련기사

▶ 토마토저축은행도 이정배에게 1200억 물렸다
▶ MB정부 개국공신 '영포 3인방' 갈라서나
▶ 이상득 "이동율 만났는지 몰라도 난 기억 없다"
▶ 최시중·이동율·이영호…구룡포 라인도 있다
▶곽승준, 파이시티 시설변경 도시계획위원 활동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