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남성 '권력' 거세지는 女性 '욕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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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신조어가 세력을 얻는 데는 무언가 사회심리적 측면이 자리잡고 있다. 방송가에서 확산돼 눈 깜짝할 새 쓰이는 맹랑한 어휘 '꽃미남'을 보자. 이 말에는 배용준·원빈 등 젊고 잘생긴 남자들의 용모와 스타일을 품평하고 즐기겠다는 여성들의 당돌한 심리가 묻어난다. 놀랍지 아니한가! 성적 취향과 욕망의 한자락을 깔고 들어가는 그 배짱이 말이다. 꽃미남이란 말의 등장은 기존 남녀 권력관계의 역전을 알리는 기미다. 해서 그건 문화사적 흐름에 속하는데, 보통 남자들은 어리둥절하기 십상일 게다. 일부일처제의 허울 속에서 심리적인 두집 살림을 내왔던 그들인지라 '망조'라고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나온 『나는 미소년이 좋다』(남승희 지음, 해냄)를 읽어보자.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애제자라는 여성 저자가 쓴 그 책은 '꽃미남 이데올로기'를 선언한다. 읽어보자. "미스 코리아 대회를 성의 상품화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젠 입 아프다. 성적 매력에 충실하려는 여자들을 '헤픈 년'으로 입방아찧는 사회의 위선도 지겹다. 그렇다면 남성에게도 감춰줘온 색(色)과 스타일을 어른스럽게 일깨워주자." 맞불 작전이다. 최근 출판물들의 한 흐름이 이 쪽인데, 그 성격이 재미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원론을 훌쩍 떠나 있고, 소설이라는 거추장스런 틀 대신 고백적 에세이로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지난주 리뷰한 『1968년의 목소리』의 지적대로 서구가 '냉전적 남녀관계', 즉 금욕적 분위기와 작별했듯이 우리 사회 역시 그 쪽 흐름을 타는 셈이다. 호불호 여부를 떠나 그게 일단 사회적 대세다. 그 점에서 탤런트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M&B,1999)는 기억할 만한 등장이었다. 그 고백은 외롭지 않았다. 서갑숙이 확보해놓은 공간에서 여성건축가 김진애 역시 『남성, 당신은 흥미롭다』(한길사,2000)는 책을 통해 '스타일이 있는 남자' 대망(待望)을 펼쳤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연초 선보인 프랑스 여성 큐레이터 카트린 밀레의 『카트린 M의 사생활』(열린책들)도 같은 성 고백서 과(科)에 속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들은 결코 추하지 않다. 또 되바라진 선정주의와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마침 나온 신간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54면에 리뷰)도 그렇다. 진보적 여성지의 편집장 출신이 쓴 이 책은 "정상적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여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남자, 즉 애인이 필요하다"고 도발적으로 말한다. 발끈하기 이전에 『슈피겔』등 독일 언론들이 왜 이 책을 정색하고 높이 평가했는지를 염두에 둬볼 일이다.

했더니만 이제 이땅 한국의 여성들은 보다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굳어진 가족제도를 양산해내는 결혼,그 너머의 '대안의 결혼'인 동거를 집단적으로 모색하고 있다.『우리 동거할까요』를 보면 정말 세상은 청동기 문명 이후의 남성권력이 해 저물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글쎄다. 방향은 신(新)모계사회 쪽일 게다. 그런 판단을 떠나 최소한 떳다방이니 무슨 게이트니 하는 정나미 떨어지는 용어가 득시글대는 현실보다는 신선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차제에 '꼬리내린 남성의 고백'인 베스트셀러 『남자』(슈바니츠 지음,들녘)를 차분하게 되읽으며 문명사의 지혜를 구해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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