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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진원지 된 의문사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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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사회 갈등의 진원지가 돼버렸다.

갈등은 민감하면서도 험악하다.

사상 전향 강요를 거부하다 감옥에서 숨진 남파간첩.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의 죽음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게 첫번째 논란거리다. 일부 조사관들의 전력에 대한 두번째 논란은 더욱 거세다.

남파간첩의 죽음을 민주화 운동과 관련있는 의문사로 인정한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있다. "관계 기관의 비협조로 사건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며 통일부를 비협조적인 기관의 하나로 적시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과거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전향공작 과정에서 남파 간첩 등이 숨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2000년 북으로 보내진 비전향 장기수 6명을 조사하겠다며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방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그들을 조사해 봐야 객관적 진술을 기대하기 어렵고 왜곡 가능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방북을 불허했다. 통일부가 비협조기관이 된 이유였다.

발표문에는 국내 거주 비전향 장기수 네명의 진술서가 통째로 실려 있었다. 여기에는 비전향 장기수 세명이 숨지게 된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중앙정보부 직원들과 교도관들은 '놈', 숨진 비전향 장기수들은 '동지'라는 표현을 쓴 것도 눈에 띄었다.

비록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고 끝내 사상전향을 거부했던 사람들이라도 폭력적 방법으로 전향을 강요했던 공안기관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남한 체제를 증오하는 듯한 표현이 담긴 비전향 장기수들의 자술서까지 공개한 의문사위가 과연 국가기구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의문사위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됐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도 궁금했다. 궁금증은 며칠 뒤에 풀렸다.

간첩죄와 사노맹 사건으로 복역했던 인사들이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과거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를 조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 다른 조사관은 군 복무 시절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군 수사기관에 구속됐던 경력이 있었다.

의문사위는 이 같은 보도를 '악의적'이라고 규정했다. 또 일부 인사들은 "사면 복권까지 된 그들이 조사관으로 일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반론도 제기해 왔다.

과연 그럴까. 물론 과거 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됐던 사람들이라도 적법 절차를 거쳐 공직이나 민간기업 등에 진출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이나 공안기관이 구속했던 인사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하필이면 그 기관들을 조사대상으로 삼는 의문사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하게 됐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어제의 피조사자가 며칠 뒤 나타나 조사자의 위치로 180도 바뀌는 기막힌 '임무교대' 장면이 벌어진 셈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재판부 기피신청이란 게 있다. 사건과 직.간접적인 관계에 있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판사를 재판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검찰의 경우도 검사에게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면 조사받는 사람이 검사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도 있는 의문사 위원들이 이를 몰랐을까. 의문사위 측은 설령 이들이 조사관이 되는 것을 원했더라도 채용하는 데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2기 의문사위의 활동시한이 끝났다. 마침 3기 의문사위의 출범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의문사위 위원과 조사관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들로 구성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공방의 초점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조사과정에 대한 시비가 없어지고 결정내용을 모든 국민이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언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