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꺾인 꿈 한국에서 펼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4남매 중 둘째 딸로 자란 주심(22·여)씨는 2004년 하이퐁대 수학과에 지원했다. 하지만 합격자 발표날이 지나도록 통지가 오지 않았다. 집안 형편상 딸의 학비를 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아버지가 합격증을 숨긴 것이다. 주심씨는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고려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주씨는 2005년 한국인 박종팔(40·농업)씨와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곧이어 쌍둥이를 낳았다. 그는 아이들이 생기자 “한국에서 살 아이들 엄마가 한국말을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역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립도서관에서 일주일에 3권씩 책도 빌려 읽었다. 주씨는 올해 경상대 국문과 외국인 수시 전형에 지원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 이주민 여성 한글 백일장 수상자들. 왼쪽부터 5위 야니(인도네시아), 4위 최염(중국), 1위 주심(베트남), 2위 짱리리(중국), 3위 사가야마 유우코씨(일본). [성균관대 제공]


그는 성균관대와 본지가 결혼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개최한 한글 산문 백일장에서 1등을 차지했다. ‘가족’이란 주제로 지난달 23일 열린 백일장에서 주씨는 “한국의 새로운 가족이 잃어버린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줬다”고 썼다.

2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주씨는 “베트남에선 하늘이 시커멓게 보였는데 한국에 와서 희망이 생겼다. 공부를 더 많이 해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국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외국 여성도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며 “그들을 위해 무료로 통역과 상담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베트남·중국·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결혼 이주민 여성 50여 명이 참가했다. 피부색과 언어가 제각각인 이들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살면서 겪은 사연과 느낌을 글로 풀어놨다.

일본 출신 사가야마 유우코(41·여)씨는 1993년 사업을 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얼마 전 여동생의 남편이 될 사람이 “한국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언니와는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유우코씨는 “(일본에서도) 외국인이 한 가족이 돼 지내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외국인인 나를 받아준 남편의 식구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연을 글로 써 3등을 했다. 고향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상품으로 받았다. 유우코씨는 남편과 함께 동생 커플을 만나 외국인도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겠다고 했다. 성균관대 이명학 사범대 학장은 “결혼 이주민 여성은 소중한 이웃인데 우리 사회가 무심한 면이 많았다”며 “그들이 자녀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백일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성대와 본지는 18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과 고려인을 대상으로 제1회 중앙아시아 한글 백일장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진경 기자

[J-HOT]

▶ 美 날리던 벤처고수들, 한국 와 1년 '고개 절레절레'

▶ 클린턴, 이례적 "장동건" 직접 불러 '찰칵'

▶ "햅틱2, 네게 없는 것이 있다" LG의 승부수

▶ 盧때리기로 포문, 추미애가 움직인다

▶ 예산 깎인 교사, 기상천외 '시험지에 광고' 대히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