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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환율로는 돈 벌지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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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2년간 환율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보고 보고하세요. 회사의 영업이익률도.”

김징완(62) 삼성중공업 사장은 2001년 대표이사에 취임하자마자 자금팀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자금팀장은 시장의 원-달러 환율 변동폭은 10%를 웃돌았으며, 수주 전액을 달러로 버는 영업이익률은 10% 안팎이라고 보고했다.

“환테크를 잘하면 영업이익률을 더욱 높일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다 까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군.” 김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는 수주하는 즉시 몽땅 환변동 위험을 제로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기업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해야 하는데, 미래의 횡재를 보고 리스크가 큰 환율에 베팅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해 왔던 그였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유능한 외환팀을 꾸린다 해도 환율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며 “제조업은 역시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런 철학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것이다. 그는 생전에 임직원들에게 환투기로 돈 벌 생각은 말라고 가르쳤다. 김 사장은 그런 경영철학을 실천했던 셈이다.

이런 경영 방침에 경쟁업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환율 예측만 잘하면 큰 이익을 낼 수도 있는데 왜 그런 기회를 포기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지금까지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수주 계약 때 미래에 들어올 달러만큼 선물시장에서 ‘파는 계약’을 하고, 지급할 달러는 ‘사는 계약’을 한다. 나머지는 원화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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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은 지난해 212억 달러를 수주해 모두 이렇게 처리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9월 말 기준으로 앞으로 3년간 들어올 달러를 평균 970원으로 고정시켰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들어올 달러를 ‘파는 계약’으로 환헤지하지만 나갈 달러는 상당량 보유한다. 환율이 오르면 이익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다 보면 갑갑할 때도 많다고 회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요즘처럼 환율이 급등할 때, 거저 굴러들어오는 환차익을 걷어차는 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때 한진중공업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삼성중공업 주가가 상대적으로 더 하락한 것도 이런 요인이 일부 작용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환헤지를 거의 하지 않아 환차익을 크게 봤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도민해(자금팀장) 상무는 “환율이 올라 평가익이 난 것은 장부상 수치일 뿐이다. 3년 뒤 확정 이익이 날 때를 봐야 한다. 환율 평가익을 보고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말했다. 분기별로 평가손과 평가익을 공시하지만 이는 회계상 허수 또는 착시라는 얘기다. 수주 금액을 몽땅 헤지해 놓으면 중간에 환율에 따른 평가손 또는 평가익에 관계없이 당초 확정된 이익대로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던 경쟁사들도 점차 삼성중공업을 벤치마킹해 따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요즘은 수주금액의 70~80%까지 환헤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는 정반대로 환헤지를 전혀 하지 않는 한진중공업의 국제금융팀 관계자도 “최근 환율이 급등해 평가익을 보고 있지만 향후 불확실성 때문에 환헤지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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