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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역의 화려한 변신 ‘교통허브’ 명성 되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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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왕십리역에 새 민자역사와 광장이 생기면서 이 일대의 모습이 확 바뀌었다. 아래는 1998년의 왕십리역 모습. [강정현 기자, 성동구청 제공]

17일 서울 지하철 왕십리역. 4번 출구로 역사를 빠져나오니 화강암으로 바닥을 깐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성동구가 한국철도공사로부터 40억원에 부지를 사고, 38억원을 들여 꾸민 것이다. 넓이 9146㎡로 서울시청 앞 광장(1만3207㎡) 에 이어 서울에서 둘째로 큰 광장이다. 한쪽에는 목재 데크가 깔린 소공연장이 마련됐고, 공연장 한가운데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5.8m 높이의 시계탑도 있다. ‘왕십리광장’으로 이름 붙여진 이곳은 19일 개장식을 한 뒤 주말마다 크고 작은 공연을 한다. 개장식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도 발표될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이 축하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미 백악관 직속인 아시아·태평양계 국가정책 자문위원을 맡았던 동포 박선근(65·미국 조지아주 항만청 부이사장)씨의 주선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십리가 고향인 박씨는 시계탑을 기증했다.

광장 끝에는 지하 3층, 지상 8층(타워 17층)의 민자역사 건물이 서 있다. 코레일과 민간사업자가 1 대 4의 비율로 18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4년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지하는 전철 및 기차역으로, 지상은 문화 복합시설로 쓴다. 건물에는 100여 개 브랜드가 모인 패션 쇼핑몰 ‘엔터6’, 국내 이마트 중 가장 큰 왕십리점이 입점해 이달 초부터 손님을 받고 있다. 스크린이 20개에 달하는 CGV 극장, 돔식 골프연습장, 워터파크, 푸드코트 등의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왕십리역은 지하철2·5호선 및 국철 중앙선이 만나는 환승역이다. 2011년 분당선 왕십리∼선릉 구간이 뚫리고, 2017년 왕십리 경전철까지 개통되면 국내 최다 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 된다. 지금의 광장 자리에 무허가 건물이 몇 채 서 있고 나머지 공간은 주차장으로 쓰였던 4년 전과 비교하면 왕십리역 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왕십리의 ‘부활’=왕십리는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한양에서 경상도·전라도·강원도에 가려면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을 나와 왕십리를 경유했다.

‘ 10리를 간다’는 뜻의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은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다. 조선의 새 도읍터를 찾던 무학대사가 왕십리에서 지형을 살피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소를 타고 지나가다 소를 채찍으로 때리며 “이 놈의 소가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구나”라고 말했다. 무학대사가 노인에게 예를 갖추자 노인은 “10리를 더 가서 도읍지를 고르라”라고 조언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조선시대 때 왕십리에는 군인이 많이 살았다. 여기서 현재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있던 훈련도감으로 출근했다. 이 때문에 임오군란의 주동자를 색출할 때 왕십리 주민들이 수난을 겪기도 했다.

왕십리역이 생긴 것은 1911년. 일제가 경원선의 첫 구간인 용산~의정부 노선을 만들면서다. 20년대 후반에는 왕십리역 이용자가 하루 평균 140명 정도였다. 해방 이듬해에는 이 숫자가 650여 명으로 늘어났다. 해외동포의 귀국, 북한 주민의 월남이 이어지면서 왕십리역을 찾는 발길이 많아진 것이다.

74년 국철 서울역~청량리 구간 개통으로 ‘서울 전철’ 시대가 열리자 한때 왕십리의 밤거리는 불야성을 이뤘다. 그러나 강남 개발에 밀리면서 왕십리는 소박한 서민의 이미지를 간직한 지역으로 뒤처졌다. 가수 김흥국의 ‘59년 왕십리’ 가사처럼 깊어가는 가을밤만이 왕십리를 달래줬다.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서울의 부도심이면서도 개발에서 소외됐던 왕십리에 민자역사가 들어서고 왕십리광장이 생김으로써 성동이 뒤떨어진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서울의 중추로 떠오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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