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주례 선 노무현 “내 팬까지 모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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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시그너스 골프장(충북 충주) 라미코스 7번 홀엔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습니다. 골프를 치러 온 게 아닙니다. 강금원 창신섬유회장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딸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섭니다.

이날 뉴스의 초점이 된 사람은 주례를 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례사에서 “강 회장은 내 정치적 성취에 버팀목이 돼 준 사람이고, 이 전 실장은 정치적 동업자”라며 “전직 대통령들은 주례를 안 선다지만 이쯤 되면 주례 한번 서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내 팬들까지 모인 것 같다”는 농담도 했습니다. 주례사는 5분으로 짧았습니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각별히 주의를 줬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결혼식 주례를 선 건 아주 드문 일입니다. 이참에 주례와 정치인에 얽힌 얘기를 풀어볼까요.

16년 전인 14대 국회 때만 해도 주례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관리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의무’였습니다. 거절했다간 “지역구민도 제대로 안 돌본다”는 악소문이 퍼지기 십상이었습니다.

13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노승환 전 의원은 1만1700여 쌍의 주례를 서 기네스북에까지 올랐습니다. 이윤수 전 의원도 8000여 쌍의 주례를 섰답니다. 이 전 의원은 주말마다 7~8차례 주례를 섰는데 교통 체증을 피해 결혼식 시간에 맞추려고 양복 차림으로 80cc 스쿠터를 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주례가 잦다 보니 “입법 활동은 게을리 하고 주례에만 몰두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1998년 5월 정치인의 주례가 선거법으로 금지됐습니다. 지금 자신의 지역구에서 주례를 했다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주례를 부탁한 유권자는 2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17대 국회 땐 주례 대신 사회를 맡는 의원도 생겼다더군요.

하지만 거물 정치인들의 주례는 여전히 세간의 화제입니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경우 퇴임 후 한 번도 주례를 맡지 않았습니다.

DJ는 71년 비서였던 방모씨의 주례를 선 뒤 97년까지 26년간 주례 청탁을 거절했습니다. 딱 한 번 관례를 깼는데 97년 영화배우 오정해씨의 결혼식입니다. 93년에 영화 서편제 출연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주례를 서주마”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YS는 70년대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엔 주례를 여러 번 맡았으나 이후 거의 안 맡는다고 합니다. 요즘도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주례를 서는 건 보기 안 좋다”고 거절하고 있답니다. ‘3김’ 중엔 김종필(JP) 전 총리의 주례 인심이 가장 후한 편입니다. 길옥윤-패티김의 결혼, 가수 이선희씨의 결혼에 주례를 선 사람이 바로 JP였답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99년 안택수 의원의 딸 결혼식 주례를 섰다가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결국 선관위에서 “이 총재가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아니어서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시비는 일단락됐습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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