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억 달러 한국 떠난다는 ‘9월 위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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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이틀째 크게 흔들렸다. 외환시장은 극도로 불안했다. 2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8.0원 급등한 1134.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사흘간 52.2원 오르며 3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가도 다시 떨어졌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7.29포인트(0.52%) 내린 1407.14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코스닥 지수도 21.07포인트(4.8%) 하락한 418.14로 마감했다. 3년8개월 만에 최저치.

이에 따라 시장 참여자는 물론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며 “겉으로 드러난 일부 모습은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지만 본질은 명백히 다르다”고 말했다.

◆위기설이 위기 부른다=증시에선 자금 악화설에 휩싸이는 기업들이 매일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날은 동부생명의 유상증자 계획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동부그룹주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동부그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금 사정이 어려워 유상증자를 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퍼졌다. 금호·두산·코오롱 등도 이런 식의 소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9월 위기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9월 만기 채권투자금 84억 달러를 한꺼번에 빼내 한국을 떠나면서 유동성 위기가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미 17억 달러를 재투자했고, 연수익률이 6%에 달하는 국고채를 마다하고 떠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기설에 대해 “쇠고기 파동과 같은 잘못된 정보의 확산”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주된 이유는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투자자들이 위기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요인을 확대 해석하기 때문이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서 자금 악화설이 돌면 돈 빌리기가 어렵게 돼 진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외환위기 학습 효과가 공포감을 키워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불안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상수지는 10년간의 흑자 기조를 접고, 적자로 돌아섰다. 올 들어 7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78억 달러다. 적자 기조에서는 원화 환율이 상승(원화 약세)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바람에 7~8월 외환보유액이 150억 달러나 줄었다. 이런 가운데 외채, 특히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1757억 달러로 외환보유액의 72%에 달한다.

실물 경기도 어렵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건설사의 부도가 속출하고 건설사에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의 형편도 좋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106개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체율은 14.3%로 1년 전에 비해 2.9%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외환위기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순우 실장은 “외환위기는 기업과 금융 부실로 연쇄 부도가 일어났던 것”이라며 “지금은 기업과 금융의 재무 상황이 크게 개선돼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떨어져도 연쇄 부도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 부채비율은 97년 425%에서 지금은 92.5%로 떨어졌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7%에서 11%로 높아졌다. 외환보유액은 2432억 달러로 10년 전의 204억 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국제 금융계에선 한국에 계속 돈을 빌려 주고 있다”며 “어려운 과정이 예상되지만 97년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토마스 번 부사장도 “한국의 수출이 견조하고 재정이 건전해 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렬·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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