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치 맛본 손님들 반응 좋아 뿌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안녕하세요, 다미야 료칸의 오카미, 우미숙입니다.”

벚꽃 무늬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여성이 한국말을 했다. 우미숙(46·사진)씨는 일본 동북부 야마가타 온천지대에 있는 다미야 료칸(旅館)의 오카미(女將)를 맡고 있다. 오카미란 일본 전통 숙박업소인 료칸(旅館)의 안주인으로, 손님맞이부터 크고 작은 살림살이를 모두 챙기는 책임자다. 우씨는 한국인으론 유일한 오카미로 알려졌다. 료칸 문화를 소개하고자 2일 서울에서 열린 ‘오카미 인 코리아’ 행사 참석차 오랜만에 고국 나들이를 한 그를 만났다.

오카미 경력 6년째인 그는 13년 전 사업을 하는 친구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어 강사와 호텔 직원으로 일하다 친구의 소개로 남편 곤노 히로시(今野浩志·40)를 만났다. 알고 보니 다미야 료칸의 후계자였다.

“제가 온천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집이 온천을 한다고 하더군요. 결혼하면 평생 공짜 온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카미가 됐으니, 글쎄 속았지 뭐에요.”

1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료칸의 안주인이 되는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일본인도 하기 어려운 오카미를 한국인이 해낼 수 있겠느냐는 시집의 우려부터 해소해야 했다.

“집안 어르신들 반대가 심했죠. 제 심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할머니와 고모들이 한국으로 직접 와서 어떤 집안 딸인지 조사해가기도 했어요.”

결국 “친척과 연을 끊어도 좋으니 함께 하자”고 말해준 남편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 2003년 결혼했다. 그 뒤 곤노 히로미(今野浩美)라는 이름으로 ‘와카(苦·수련) 오카미’ 생활을 하면서 한국인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기모노 입는 법에서부터 꽃꽂이·다도·요리에 이르기까지 배울 것이 줄을 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기모노를 갖춰 입고 일을 시작하면 저녁식사는 9시를 훌쩍 넘겨 하게 되는 바쁜 일상이다.

처음엔 직원 텃세도 심해 마음고생이 많았다. “일부러 목욕탕 청소 같은 궂은 일부터 요리까지 직접 했어요. 웃음 소리도 작게 내고 몸가짐도 조심하는 등 각별히 주의를 했죠.” 하나의 한자가 여러 독음을 가진 일본식 한자에 익숙지 못해 손님 이름을 잘못 부른 일도 많았다. 남·녀 온천탕이 자주 바뀌는 일본 료칸의 특성을 잘 모르고 남탕에 청소하러 들어가는 실수도 했다. 그런 고생 끝에 결국 직원과 가족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고혈압으로 쓰러진 손님을 들쳐 업고 근방 병원으로 간 적도 있다. 그 손님은 그 뒤로 계속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한다.

그런 며느리를 눈여겨본 시어머니는 지난달 초, 정식 오카미의 자리를 넘겨줬다. 손님의 음식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손님을 직접 응대하는 것까지 모두 그가 전면에 나서서 지휘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일본의 절임 야채인 쯔께모노는 반드시 직접 담근다.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가 특기다.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이 ‘아, 바로 우리 어머니 손맛이구나’라고 칭찬할 때 기분이 좋다고 한다.

다미야 료칸에 한국풍을 입히는 것도 그의 꿈 중 하나다. 그의 제안으로 식사에 김치를 곁들여 내고 있다. “전통을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그래도 손님들 반응이 좋아 뿌듯해요. 떠날 때 김치를 선물로 드리기도 하지요.” 앞으로 한국 전통 자개장을 거실에 들여놓고 싶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한국으로 치면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온 거랑 비교할 수 있겠죠. 누가 하겠다고 나서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릴 걸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젠 오카미를 자신의 숙명으로 느낀다고 한다. “때론 내가 료칸과 결혼을 했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손님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피곤함도 잊는답니다.”

글·사진=전수진 기자

▶[J-HOT]

▶주민이 목사 월급주는 기독교마을에 불교가

▶서인영 음반제작사, 인터넷 검색하다 '깜짝'

▶불심 달래러 간 이상득, 조계종 관계자와 고성 오가

▶인재 뽑으러 온 日대기업 "한국인 교육수준 높고 어학능력 뛰어나"

▶끙끙 앓던 재향군인회, 7000억대 아파트 사업 접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놀란 대구시 '잠 못자겠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