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 <하> “시위 떠난 화살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 개혁 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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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상하이의 중심가 구베이(古北)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리샤오위(李小宇·37). 경제학 석사 출신인 그는 숨어다니는 처지다. 주식이 화근이었다. 그가 친구와 친지의 돈을 끌어 모아 ‘주식투자단’을 조직한 것은 지난해 여름. 그는 한때 500만 위안(약 7억5000만원)을 굴리는 어엿한 펀드매니저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시작된 주가 폭락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급락할 때마다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때마다 돈을 더 모아 주식을 샀지요. 그러나 며칠 못 가 주가는 또 폭락했습니다. 투자금은 반 토막이 났고, ‘내 돈 돌려달라’는 친구의 아우성에 결국 집을 팔아 일부를 돌려줘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리샤오위는 “주식시장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선전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개발 업체들이 ‘아파트 세일’에 나서고 있다. 선전 시내에 건설되는 한 아파트 건물에 ‘2만 위안(약 300만원)만 내면 내 집을 ’이라 는 판촉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선전=한우덕 기자]

주식 ◆‘주스(救市)’보다는 ‘즈스(治市)’다= 리샤오위가 애타게 기다리는 부양책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현지 증시 전문가들은 주식시장 흐름에 대한 정부의 기본 시각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자산운용사 후이텐푸의 펀드매니저인 루원레이(陸文磊)는 “지금 주가폭락은 ‘정상적인 버블 붕괴의 과정’이라는 게 당국의 기본 인식”이라며 “증권당국은 단기 부양책보다는 제도개선을 통한 시장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양책을 뜻하는 ‘주스(救市)’보다는 시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즈스(治市)’에 정책방향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최근 기관투자가들의 선행매매 행위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의 형벌을 가하도록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 증시에서 폭넓게 벌어져 온 내부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중국 증권당국은 이 밖에도 신용거래 도입, 주가지수선물거래 등을 검토하고 있다. 모두 증시 선진화를 위한 ‘즈스(治市)’작업이다.

중국의 주가폭락 이유는 많다. 거시경제 악화, 기업순익 감소, 금리인상, 여기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겹치면서 지난 10개월 동안 무려 60% 이상 주저앉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비(非)유통주 문제였다. 2005년 시작된 주식시장 개혁에 따라 2010년까지 상하이·선전 증시의 현재 시가총액보다 약 1.5배 많은 비유통주 물량이 시장에 풀리게 된다. 중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제아무리 커도 이 물량을 받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증시 회생의 유일한 돌파구는 비유통주 개혁의 중단’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비유통주 개혁정책을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증권당국의 뜻은 확고해 보인다. 장판(張帆) 더방(德邦)증권연구소 소장은 “비유통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증시 선진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언젠가는 묶였던 비유통주가 풀릴 것이라는 사실이 투자심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 증권가에서는 2005년 상푸린(尙福林)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주식개혁을 시작하면서 제시한 ‘시위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開弓沒有回頭箭)’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개혁은 되돌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 관계자는 “상 주석의 말은 아직 유용하다”며 “작은 수정은 있을 수 있어도 비유통주를 모두 시장에 풀겠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부양책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전문가들은 상하이·선전 주가가 ‘L’자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한다. 증시 침체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격 폭락 진원지 선전엔 연일 아파트 세일
업체 부도에도 시장 체질개선 기회로 여겨

부동산 ◆‘위기를 틈타 시장질서를 잡는다’=선전시 바오안취(寶安區)의 ‘찬테스·베이’아파트 분양 현장. 사무실 한편에 ‘르진첸진(日進千金)’이라는 글자를 새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지금 매입 계약을 하면 분양일까지 남은 날짜를 따져 하루 1000위안씩 돌려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를 빨리 팔아치우기 위해 고안한 판촉행사였다.

부동산 가격 폭락의 진원지인 선전은 지금 ‘아파트 세일’이 한창이다. ‘가장 먼저 등록한 100명 중 2명을 추첨해 벤츠 자동차를 선물로 준다’ ‘2만 위안만 먼저 내고 나머지는 입주 후 받는다’는 등의 판촉 구호가 신문에 난무하고 있다. 선전에서 부동산중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세 성신부동산 사장은 “시내 고급 아파트인 포르토피노의 경우 지난해 5월 ㎡당 약 4만 위안(약 600만원)에 거래됐으나 지금은 2만5000위안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며 “전반적으로 지난해 고점 대비 30~40%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크게 상승했던 상하이와 베이징 등도 선전보다는 덜하지만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중소 개발업체들이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다. 완커(萬科), 비구이위안(碧桂園) 등 대형업체들도 현금 확보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 세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중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주스(救市)’보다는 ‘즈스(治市)’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리한 부양책보다는 제도 개선을 통해 시장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일부 도시의 부동산 가격 폭락은 ‘버블이 꺼지는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게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차이나의 마쯔후이(馬玆暉)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들은 주택을 지어 최고 200~300%의 폭리를 얻는다”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 같은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폭락 장세를 틈타 시장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선전의 부동산 가격 폭락세가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오를 이유는 더더욱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락에 따른 ‘중국식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해 ‘기우’라고 단언한다. 마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로 위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다”며 “그러나 중국은 부채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가 분명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선전·상하이=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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