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번다… ‘가마우지’ 신세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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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가마우지라는 새가 있다. 일본과 중국 일부 지역 낚시꾼들은 이 새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발견하면 재빨리 끝 부분이 갈고리처럼 생긴 긴 부리를 이용해 낚아챈다.

그러면 낚시꾼이 가마우지 목에 미리 매어놓은 끈을 당겨 삼키지 못하게 한 뒤 물고기를 가로챈다.

1980년대 말 일본의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가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한국경제를 이런 가마우지 신세에 비유했다. 당시 한국은 이른바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에 힘입은 대미 수출 호조로 대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그 수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핵심 부품은 거의 일본산이었다. 말 그대로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버는 격’이었다.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고 휴대전화기술이 대단하다지만, 국산화율은 69% 수준이다.

휴대전화를 많이 만들어 팔수록 일본에서 핵심 부품을 더 많이 수입해야 한다. 지난해 대일본 적자가 298.8억 달러, 대중국 흑자가 189.6억 달러, 대미 흑자가 85.5억 달러였으니 중국과 미국에서 돈을 벌어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준 꼴이다.

더구나 올해는 대일 적자가 상반기에만 이미 170.4억 달러를 기록해 연간으로는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넘게 생겼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올 상반기까지 42년 남짓 대일 적자 누적규모는 3,282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체 무역수지가 1,010억 달러 흑자였으니, 다른 나라에 힘들게 팔아 번 돈의 3배도 넘는 액수를 일본에 바친 셈이다. 수출입 차이인 상품수지만 적자 수렁을 헤매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필두로 특허료·지적재산권 등 서비스수지 쪽으로도 적자 기조가 번지고 있다.

서비스수지가 적자로 바뀐 것은 원화 강세(원 -엔 환율하락)의 영향으로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이 급증한 2005년부터다. 그 와중에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은 일본에서의 한류(韓流) 바람이 최고조에 이른 2004년 이후 줄었다.

급기야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239만 명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224만 명)을 처음 앞질렀다. 그 결과 대일 여행수지 적자는 2005년 5.4억 달러에서 지난해 28.8억 달러로 5.4배로 불어났다.

상품수지야 일본산 부품·소재를 들여와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 전체적으로는 흑자를 일굼으로써 당장 현실적으로 어쩌기 힘들다. 하지만 여행수지 적자는 비행기 타고 나가 먹고 마시고 물건 사는 데 쓰는 돈이다.

한국의 해외여행 지급액은 지난해 208.9억 달러로 일본(264.3억 달러)의 79% 수준이다. 단순비교하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여행지급액 비중은 2.2%로 일본(0.6%)의 3.7배나 된다.

결국 지금 우리는 기술력이 떨어져 일제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데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사는 게 조금 나아진 것 같자 앞다퉈 해외여행 길에 올라 일본사람들보다 더 헤프게 돈을 뿌리고 다니는 셈이다. 한국이 가마우지 신세를 면하려면 부품·소재산업 육성은 물론 국내 관광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높여야 한다.

글■양재찬 월간중앙 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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