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달이 꿈이었는데 … ” 끝내 울고 만 비운의 복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링에서 쓰러지게 해주십시오.”

백종섭 선수가 15일 베이징 공인 체육관에서 열린 복싱 라이트급 16강전에서 태국 피차이 사요타의 안면을 강타하고 있다. 백 선수는 19일 열리는 8강전에 진출했지만 16강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기권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베이징 올림픽 복싱 라이트급에 출전한 백종섭(28·충남체육회)은 그렇게 외쳤지만 담당 의사와 코칭 스태프는 그를 붙들었다. 기관지 파열이란 중상을 당한 선수를 링에 올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메달권 진입이란 소박한 목표를 안고 올림픽에 나섰던 백종섭이 고지를 눈앞에 두고 꿈을 접었다. 19일 오후 하르치크 야바히안(아르메니아)과의 8강전을 몇 시간 앞두고 백종섭은 눈물을 머금고 기권했다. 8강전에서 승리할 경우 동메달을 확보할 수 있다.

잘 싸운 16강전에서 문제가 생겼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백종섭은 15일 피차이 사요타(태국)와의 16강전에서 10대 4로 낙승했다. 하지만 목과 가슴에 가격당한 통증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베이징 시내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기관지 파열이란 진단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촬영 사진을 베이징의 다른 병원과 한국에도 보내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천인호 복싱대표팀 감독은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현재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으나 폐에서 나온 공기가 파열 부위로 새어 나와 심장을 비롯한 가슴 안의 여러 장기를 압박하고 있다. 과격한 운동을 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 때마다 계체를 통과해야 하는 백종섭은 밥 두세 숟갈로 한 끼를 때우면서 메달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 그는 네 살 난 딸을 둔 가장이다. 2004년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충남체고 시절 함께 운동한 차문이씨와 가정을 이뤘다. 복싱에만 매달린 백종섭은 군대 갈 시기도 놓치고 말았다. 자신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 이번 대회에서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동메달 따는 것을 가장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굶다시피 하면서도 “딸아이의 전화가 밥 한 공기보다 낫다”고 말하던 그였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 태권도를 한 부인과 지각 결혼식도 올리고 은퇴 후 태보(태권도와 복싱을 혼합한 운동) 체육관을 차리는 게 소망이었다.

그러나 백종섭은 끝내 ‘8강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딴 은메달을 제외하면 세계 무대에서 8강이 한계였다. 첫 도전인 2003 세계선수권에선 대회 3연패의 주인공 마리오 킨델란(쿠바)에게 막혀 4강 진출이 좌절됐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때는 10대 돌풍의 주역으로 은메달을 딴 아미르 칸(영국)에게 패했다. 2005 세계선수권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천인호 감독은 “종섭이의 상심이 크다. 인터뷰는 다음으로 미뤄 달라”고 간청했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J-Hot]

"언제 아랍 공주님 얼굴 때리겠냐, 맘껏 두들겨라"

"김감독, 기득권 버리고 중국 와" 中 난리

궈징징 300억 결혼대박! 재벌3세 선물공세

박태환·장미란·사재혁, 뭘 하면서 지낼까

한우물만 파 은메달 딴 '경상도 사나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