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쿄·홍콩 주부 “뛰는 물가에 20년 식습관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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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고물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유가에다 설탕·밀가루 등 기본적인 상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 생활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서울·도쿄·홍콩 3개 대도시에 사는 주부들의 마음고생은 더 심각하다. 본지는 12일 오후 세 지역에 사는 주부 3명의 장보기에 동행해 그들이 겪는 고통과 ‘알뜰 작전’을 살펴봤다. 그 결과 그들의 장보는 습관뿐만 아니라 식습관과 생활 패턴까지 ‘왕짠돌이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혜원(36) 금천구 시흥2동


서울 - 마트 덜 가고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어

서울에 사는 주부 김혜원(36·금천구시흥2동)씨는 12일 오후 2시쯤 홈에버 시흥점을 찾았다. 돈가스 덕용 포장 10개짜리를 싸게 판다는 판매원의 말에 솔깃했지만 이내 “그냥 두 장만 달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턱없이 오르면서 대용량 제품을 거의 사지 않는다”며 “소량 구매보다는 덕용 포장이 다소 싸지만, 못 먹고 버릴 확률도 그만큼 높다”고 했다. 또 “야채나 과일도 마찬가지”라며 “한 개씩 사던 수박이나 무도 이제는 절반이나 4분의 1로 쪼개 놓은 것을 산다”고 밝혔다.

김씨는 드레싱류, 냉면·냉동 만두, 스파게티와 같은 반제품이나 인스턴트 완제품은 아예 쇼핑 카트에 담지 않았다. “샐러드 드레싱 하나에 3000원 이상이 대부분이에요.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쌈장이나 드레싱·만두도 직접 만들어 먹으면 훨씬 돈이 덜 들죠.”

김씨는 아들(9) 때문에 고기를 많이 사는 편인데, 얼마 전까지 100g에 1300원 하던 삼겹살이 2000원으로 뛴 것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한창 클 때인데, 먹고 싶어 하는 걸 안 사줄 수도 없고….”

별수 없이 원래 사려 했던 자신의 샌들과 아이 내의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마트에선 아이들이 조르는 바람에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집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제자리에 놓는 주부가 많았다. 김씨는 “지난해 500원 하던 아이스크림 바가 700원이고, 콘 종류는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1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갔는데, 요즘엔 열흘에 한 번꼴로 줄였다”고 밝혔다. 또 “식재료 한두 가지가 없으면 이전에는 그냥 마트에 갔는데, 요즘은 동네 수퍼에서 해결하거나 다른 재료를 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씨네는 시골의 시댁에서 농사지은 쌀·감자·옥수수·고추 등을 보내 줘 다른 집보다는 생활비가 덜 드는 것 같은데도 물가고는 심각하다고 했다.

“남편 월급(400만~500만원)은 그대로인데 한 달 생활비는 1년 사이에 40만원 넘게 오른 것 같아요. 예전엔 월급의 3분의 1은 저축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살기 빠듯해요.”


스기우라(51) 네리마구 다카노다이

도쿄 - 신문 전단지 챙기고 아침은 빵 대신 밥

 12일 오후 4시쯤 일본 도쿄 네리마(練馬)구 샤쿠지(石神井) 공원 부근에 있는 대형 수퍼마켓 체인 ‘퀸즈이세탄’ 내 제빵 코너. 주부 스기우라 유미코(杉浦由美子·51)는 빵 봉지를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후리가케(밥 위에 뿌려먹는 양념)와 오차즈케(녹차에 밥을 말아 먹을 때 넣는 양념)를 파는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결혼한 지 25년 된 그는 “살인적인 고물가 때문에 20년 넘은 식습관을 얼마 전 바꿨다”며 “일부 물건 가격이 오른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모든 제품이 일제히 값이 오른 경우는 결혼 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한 봉지에 97엔(약 920원) 하던 식빵이 지난달에는 168엔까지 오르고, 198엔 하던 식용유 값은 370엔으로 뛰었다고 했다. 그는 “올 들어 빵 값이 급등하고 버터까지 품귀 현상을 보여 할 수 없이 카레나 오차즈케와 같이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품 구입 비용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 밥상 차리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퀸즈이세탄에서 물건 가격을 비교하던 스기우라는 “값이 오른 것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상품의 양이 줄어 가계에 큰 타격”이라며 “주위 친구들도 집안의 전구를 하나씩 빼놓는가 하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는 등 에너지 절약을 겸한 긴축재정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다 보니 장보는 습관도 달라졌다”고 했다. 실제로 퀸즈이세탄에서 유심히 고기·계란·야채 등의 가격을 비교해 보더니, 정작 식재료는 사지 않고 다른 공산품 일부만 산 뒤 나왔다. 그는 “고기와 계란 등 웬만한 식재료는 가격 비교를 한 뒤 좀 더 싼 통신 판매로 구입하고 야채는 저렴한 동네 채소가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 “매일 조금씩 장을 봤지만, 이제는 이틀에 한 번으로 줄였다”고 했다. 장 보는 횟수가 줄면 그만큼 덜 산다는 것이었다. 그는 “젊은 주부들은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나 저렴한 통신 판매 업체를 이용하고, 중년 이상은 주로 신문에 끼워져 들어오는 광고 전단지 등을 비교해 가장 싼 곳에서 산다”고 ‘절약 비법’을 소개했다. “광고 전단지를 꼼꼼히 보는 것이 오전의 주요 일과”라는 것이었다.


보니 찬(30) 홍콩섬 메이푸


홍콩 - 일주일에 다섯 번 하던 외식 한 번으로

 12일 오후 2시쯤 홍콩섬의 노스포인트(北角)에 있는 수퍼 체인 ‘웰컴’을 찾은 결혼 1년차 주부 보니 찬(陳純宜·30). 그는 “살인적인 고물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적인 장보기”라고 말했다. 그의 ‘과학 쇼핑’은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됐다.

우선 우유 쇼핑 방법부터 설명했다. “용량이 작은 것은 여섯 개 이상 묶인 상자 단위로 사거나, 500mL 이상의 대용량 우유를 삽니다. 그러면 최소한 10%는 싸게 사요.” 우유 값이 올 초 대비 평균 56%나 올라 고민 끝에 발견한 노하우였다.

생수는 500mL 에비앙(9.8홍콩달러)이나 볼빅(7.9 홍콩달러)을 마셨는데, 몇 달 전부터 500mL당 2.4홍콩달러인 퍼스트초이스로 바꿨다. 생수는 연초 대비 5% 정도만 올랐지만, 부부가 매일 한 병씩 마실 경우 한 달에 220홍콩달러(1홍콩달러=133원)가 절약된다고 했다. 채소는 벌레가 먹었거나 싱싱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골랐다. 그는 “벌레 먹은 채소일수록 농약을 적게 쓰고, 가격이 정상 채소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며 “올 초부터 이렇게 했더니 채소 가격이 연초 대비 30% 이상 올랐음에도 구매 비용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 코너로 갔다. 미국산이나 호주산이 네 개에 12.9홍콩달러였다. 그는 “지난해보다 50%나 비싸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사지 않은 채 수퍼를 나와 재래시장까지 300여m를 걸어가 오렌지 20개를 샀다. 그는 “‘웰컴’에서 사는 것보다 6홍콩달러를 아꼈다”며 좋아했다.

그러나 “이 정도 절약으로는 최근 10년 새 최고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현실을 이겨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해까지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하던 남편과의 외식을 한 번으로 줄이고, 거의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요리를 한다. “외식할 때와 비교했더니 집에서 요리하는 게 평균 20% 정도 이득이었어요. 또 남편은 요리하고 난 보조를 하는데, 외식 때보다 대화 시간이 늘어 서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 것 같아요.”

부부 수입 5만 홍콩달러 가운데 40%를 저축하던 찬은 내년께 집을 장만할 계획이었으나 “계획대로 될지 걱정”이라며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15개 품목 비교해보니…장바구니 물가는 도쿄 >서울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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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도쿄·서울은 아시아에서도 물가가 비싼 대표적 도시들이다. 3개 도시의 물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본지가 일반 가정이 자주 이용하는 15개 품목의 가격을 서울·도쿄·홍콩에서 12일 오후 일제히 조사해 비교해 봤다. 비슷한 규모의 대형 마트인 서울의 ‘홈에버 시흥점’, 홍콩 코스웨이 베이에 있는 수퍼마켓 체인 ‘웰컴’, 도쿄 네리마(練馬)구 샤쿠지(石神井)공원 부근의 수퍼마켓 체인 ‘퀸즈이세탄’에선 고기 등 11개 품목을 조사했다. 그 밖에 스타벅스 커피, 맥도널드 햄버거, 지하철 요금, 영화 관람료 등 4개 품목을 비교했다. 그 결과 서울이 홍콩보다는 비싸고, 도쿄보다는 다소 싼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가장 비싼 품목은 와인과 스타벅스 커피였다. 와인(칠레 몬테스알파 카베르네 소비뇽 2006년산 기준)은 서울(병당 3만4900원)이 홍콩(1만5820원)의 2.2배, 일본(2만434원)의 1.7배였다.

스타벅스 커피값도 아이스 카페 라테 톨 사이즈의 경우 서울은 3800원인 데 비해 홍콩은 3722원, 일본은 3513원이었다. 서울이 3개 도시 중 가장 싼 품목은 설탕(1㎏ 1067원), 계란(10개들이 1950원), 영화표(8000원)밖에 없었다.

돼지고기·양파·오이·당근·쌀·와인·두부·지하철·맥도널드 빅맥세트 등 9개 품목은 홍콩이 가장 쌌다. 그러나 쇠고기가 100g당 4789원으로 한국(4680원)이나 일본(4558원)에 비해 비쌌다. 최근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한 탓이다. 또한 밀가루 1㎏이 3922원으로 서울(1420원)이나 일본(2830원)에 비해 비쌌다. 또 계란 값도 10개들이 묶음이 2235원으로 한국의 1950원이나 일본의 2165원보다 고가였다. 도쿄 시민들은 쇠고기·와인·스타벅스 커피 등 3개 품목을 제일 싼값에 살 수 있었지만, 10개에선 가장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홍콩·도쿄=최형규·박소영 특파원, 서울=최지영·김태성 기자·김민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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