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독일이 인도주의를 내세워 레나테 가족의 상봉을 거듭 요구하자 결국 북한은 이를 수용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종전 동구권의 외국인 이산가족 상봉 요청을 계속 외면해 오던 관례에 비춰볼 때 파격적이다.
이 같은 결정은 북한의 경제적인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은 서방국가 중 북한에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독일 주재 홍창일 북한 대사가 외무성이 아닌 무역성 출신이란 사실만 봐도 북한의 독일에 대한 경제적인 기대를 단박에 읽어낼 수 있다. 독일은 2001년 쇠고기를 지원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경제 원조를 북한에 제공하고 있다. 독일 구호단체 ‘카프 아나무르(구조 의사회)’ 등 민간단체도 꾸준하게 대북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 독일의 대기업 17개 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동아시아협회(OAV) 평양사무소는 북한과 서방 교역활동의 주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독일은 북한의 학생과 관리·언론인들의 유학을 정기적으로 받아들여 북의 고등 인력 양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독일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적인 여론의 압박 또한 레나테 할머니의 상봉에 멍석을 깔아 줬다. 지난 1년9개월에 걸친 중앙일보의 집요한 보도로 레나테 가족의 상봉 문제는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대중 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등이 돕겠다고 나선 것도 북한으로선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예나(독일)=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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