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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 - 홍옥근 첫 편지교환 내용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음은 레나테 할머니와 홍옥근씨가 44년만에 교환한 첫 편지 전문. ( )는 이해를 돕기위한 설명.

○ 레나테 홍이 홍옥근씨에게

사랑하는 옥근씨에게, 예나, 2007년 3 월20일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매우 기뻐요.

우리가 예나에서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답니다. 당신에게서 멋진 두 아들을 얻을 수 있게 된 행운에 대해 감사 드려요. 애들에겐 종종 당신에 관해 얘기를 해주곤 했어요. 두 아들은 아버지가 북한에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저는 아직 건강하지만 이미 늙어서 때론 힘이 없어 쉽게 피로해 지는 것을 느낀답니다. 두 아들 페터와 우베가 잘되도록 하기위해 저는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애들이 아플때면 물론 저 역시 많은 걱정을 했지요. 학교에서 페터와 우베는 항상 열심히 공부했고 매우 훌륭한 학생이었답니다.

당시 우리들은 예나 시내에 작은 집을 얻어 함께 지냈어요. 저는 10년간 교사로서 일했고 그 다음에는 제약회사 예나팜(Jenapharm)에서 22년간 근무를 했어요. 1993년부터 은퇴해 연금을 받고 있지요. 저는 재혼을 하지 않았어요. 그랬기에 당신의 이름을 여전히 성으로 쓰며 추억거리로 간직할 수 있었어요. 현재 저는 혼자 살고 있어요. 페터와 우베가 더 이상 예나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 집은 고층건물의 9층에 있어요. 창가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예나시의 산들이 보인답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할때면 페터나 우베가 항상 찾아오니까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3명의 손주가 종종 놀러 오기도 해요. 이제부터 두 아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요.

페터 현철은 학교를 졸업한 후 낙농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었어요. 그 아이는 아직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지요. 현재는 2000마리의 소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하는 농장을 이끌고 있지요. 페터는 여자친구와 예나 근처의 마을에서 살아요.

우베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화학과를 졸업한 후 박사학위까지 했어요. 그 아이는 공업접착제를 개발하고 응용하는 업체에서 일을 한 답니다. 결혼을 했고 아들과 딸 둘을 두고 있어요. 애들은 아직 학교를 다닌 답니다. 우베 가족은 바이마르에서 집을 사서 살고 있지요. 아마도 나중에 페터와 우베가 당신을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당신도 가정을 꾸렸고 자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페터와 우베에게 또 다른 형제자매가 생겼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요. 당신이 성공적으로 학자생활을 해온 것에 대해 우리들은 기뻐하고 있어요. 당신과 당신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당신에게서 답신이 오기를 바래요. 당신과 가족이 모두 잘 지내길 바랍니다. 특히 건강하시길 빌어요.

마음으로부터 인사를 보내요!

페터와 우베, 그리고 아이들의 어미가

○ 홍옥근씨가 레나테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레나테,

당신의 편지를 받고 크게 감격했소. 당신이 건강하다니 기쁘오. 당신에게서 다시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 구료. 나는 당신이 나의 영원한 인생의 반려자가 되기를 소원했었다오.

그렇지만 당(동독)은 당신이 우리 나라(북한)로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오. 그때 당신 나라(동독)는 “당신이 코리아로 간다면 그것은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었소. 정치란 때론 바보같은 일을 저지르곤 한다오. 나는 당시 잘못된 희망을 가졌었소. 우리의 국제적인 사랑은 그런 고통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과 두 아들과의 만남을 갈망해왔다오. 나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해 왔소. 나도 역시 두 며느리와 손주들을 보고 싶소. 볼프강(처남), 잉에(처제)와 요헨(처남)도 만나고 싶구료. 당신의 부모님은 당연히 이미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되오.

당신이 페터(큰 아들)와 우베(차남)를 키우느라고 무척이나 애를 썼구료.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할말이 없구료. 당신의 편지를 받고난 이후 나는 무척 기분이 좋다오.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장군 덕에 나는 독일에서 유학을 할 수 있었소. 그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조선지식인대회(조선 학술 및 발명가대회)에 참가했소.

미국의 독선적이고 숨막히게 하는 정치 때문에 우리는 이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오. 잘 지내길 바라오. 아이들도 직장에서나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두길 소망하오. 무엇보다도 건강하기를 바라오.

2007년 6월20일 함흥

홍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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