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0일 태평로 성난 ‘촛불 민심’ 그러나 폭력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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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10일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태평로에는 오후 6시부터 인파가 몰려들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태평로를 가득 메웠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은 경찰이 쌓아 놓은 컨테이너박스로 가로막혀 있었다. 참가자들은 컨테이너에 ‘명박산성’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오후 7시쯤 주최 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연단에 사회자가 올라왔다. 사회자는 참가자를 분류해 하나하나 불렀다. ‘넥타이 부대’ ‘어머니’ ‘대학생’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10대 참가자들도 확인했다. “처음부터 시위를 이끌었던 청소년 여러분 오셨습니까.”

◇“한열이가 돌아왔습니다”=오후 7시30분 연세대를 출발한 ‘이한열 열사 국민장 행렬’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다다랐다. 1987년 6월항쟁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고 이한열씨의 장례식을 재연한 것이다. 그 옆에는 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걷고 있었다. 운구가 도로를 따라 세종로 앞 네거리로 향했다. 그사이에도 집회 참가자들은 꾸준히 몰려들었다.

오후 7시40분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세종로 네거리 연단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장관은 “사죄하러 왔다. 죽을 각오로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이 “매국노”를 외치며 정 장관을 둘러쌌다. 그는 10분쯤 버티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으로 물러났다. 일부 참가자는 “이명박은 이완용”이라는 구호를 즉석에서 만들어 외치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서자 ‘이한열 열사 영정’이 연단에 도착했다. 어머니 배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21년 전 그때 우리 한열이의 마지막 말이 엄마를 부를 줄 알았지만 ‘나는 내일 시청에 간다’였습니다. 한열이가 21년 만에 다시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21년 만에 돌아온 것은 ‘이한열 열사’뿐만은 아니었다.

◇21년 만에 다시 등장한 넥타이 부대=직장인 박모(43)씨는 10일 근무를 마치고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를 찾았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감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그가 촛불집회에 참가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21년 전인 87년 6월, 박씨는 성균관대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호헌 철폐’를 외치며 광화문 일대를 뛰었다. 당시 저녁이 되면 ‘넥타이 부대’가 합류했다. 21년이 흘러 박씨가 ‘넥타이 부대’가 돼 광화문으로 나왔다. 박씨는 이날 대학 선후배와 함께 나왔다. 그는 “당시 우리가 외쳤던 민주주의는 많이 이뤄졌지만 쇠고기 수입협상처럼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고 지적했다.

명동성당에 모였다가 세종로 네거리까지 행진한 직장인 30여 명은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함께해요. 어게인(AGAIN)! 1987년 6월 10일’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퇴근하고 시청으로’ 구호를 외쳤다. 6월항쟁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오후 9시쯤 세종로 네거리 연단에는 가수 양희은씨가 나와 아침이슬을 불렀다. 양씨는 “여러분이 부르세요”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이날 가장 큰 노랫소리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한 번 더”를 외쳤지만, 양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단을 내려왔다. 가수 안치환씨도 ‘자유’ ‘광야에서’ 등의 민중가요를 불렀다. 안씨는 “컨테이너박스로 벽을 세움으로써 대통령은 스스로 독에 갇혀 버렸다”고 소리쳤다.

세종로 앞 네거리 좌우 방향, 서대문로와 종로 방향 중앙선에는 촛불이 일렬로 밝혀져 있었다.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 접속이 한때 지연되기도 했다. 대책회의 측이 ‘온·오프라인 공동 실천으로 100만 촛불을 밝히자’며 청와대와 한나라당 인터넷 홈페이지에 항의성 글을 올리는 ‘재택 실천’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네티즌이 동시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서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글=강인식·김민상·김진경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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