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게 … 더 넓게 … 더 크게 … 더 많이 … 수퍼사이즈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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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동쪽에 해가 비치지 않는다면 (그땐) 서쪽에 해가 비치고 있다(東方不亮 西方亮).”

중국인의 크기에 관한 관념은 남다르다. 과시욕도 남다르다.

‘사이즈’에서 주변을 압도하는 중국의 이런 초대형 취향은 올림픽 관련 행사 규모·자원봉사 지원자 수 등 역대 올림픽이 세웠던 최다·최대 기록을 수없이 갈아치우고 있다.

◇현대판 ‘만리장성’=베이징 시내 가운데에 위치한 베이징 서역(西驛). 플랫폼부터 역사 출구까지 빠져나오는 데 평균 걸리는 시간이 20여 분에 달하고, 동서 방향의 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러도 5분 이상 걸린다. 그래서 지난해 서역을 이용한 경험이 없는 한 중국 기자가 실험을 해봤다. 입구에서 5번 플랫폼으로 가서 손님을 마중해 입구까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봤다. 미로 같은 통로·계단을 반복해 오르내리는 복잡한 동선이었다. 플랫폼 출입표를 끊는 데 소요된 시간까지 합했더니 모두 1시간30분이 지났다. 역 관계자는 “안내 표지를 늘리고 안내 센터도 신설했지만 요즘도 길을 헤매다 제 시간에 열차에 오르지 못하는 승객이 하루 평균 2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언론들은 서우두(首都) 공항의 제3공항청사를 ‘미니 신도시’로 표현한다. 제3청사(98만6000㎡)는 인천공항 면적의 약 2배에 달하는 단일 공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축구장이 170개 들어가는 넓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카운터에서 수속을 밟고 5분간 모노레일로 이동해 짐을 찾을 때까지 약 30분 걸린다. 좌우 거리(약 3㎞)가 워낙 길다 보니 자칫 비행기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

국가가 주도한 건축물만 큰 게 아니다. 2006년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이 개발한 왕푸징(王府井) 남쪽 오피스·쇼핑 복합공간, ‘둥팡광창(東方廣場)’도 잠실 종합운동장 13개를 합친 크기로 중국의 초대형 취향을 한눈에 보여준다.

상하이에서 사업차 들른 천바오칭(陳寶慶·37·금융업)은 “베이징보다 10년 이상 먼저 개발 바람이 불었던 상하이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대형 건물”이라며 “고도인 베이징 한복판에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나”라고 말했다.

◇행사엔 ‘인해전술’=올림픽 관련 행사와 참여하는 인력 규모도 ‘인해전술’이다. 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경기장 등 대회시설 안팎에서 활동할 자원봉사자 10만 명과 베이징 시내 500곳에 설치된 안내센터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봉사요원 40만 명 등 50만 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사상 최대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아테네올림픽 자원봉사자(6만여 명)의 8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조직위는 대회 기간 베이징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는 관광객(50만~80만 명)에게 일대일 안내 서비스를 목표로 잡았다. 모집 마감까지 두 달 넘게 남았지만 이미 신청자가 250만 명(조직위 공식 웹사이트)에 달했다.

올림픽 개막식 식후 행사에는 약 1만 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막식 행사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요원만 1000명에 달하는 역대 최다 개막식 준비 조직이다. 식전 행사에는 ‘2008대의 피아노 연주회’가 계획돼 웅장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장관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비인기 종목의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는 약 20만 명의 응원단이 투입된다. 국영기업 퇴직자, 60여 개 기업 노동자, 지역별 중·노년층으로 응원단을 꾸려 최근 예행 연습에 들어갔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성화봉송도 최장으로=크기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관심’은 성화 봉송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역대 올림픽 최장 구간을 달리도록 짰다. 130일 동안 5대양 6대주의 22개 도시와 중국의 113개 도시를 달리는 거리는 13만7000㎞에 달한다.

◇왜 크기에 집착할까=중국·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거대한 규모를 지향하는 것일까.

중국 사회과학원 진시더(金熙德·정치학) 교수는 제왕학적 관점에서 ‘사이즈’ 문화를 설명했다. 진 교수는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거대한 건축물이 세워졌던 것은 아니다”라며 “남쪽 지역과 달리 제왕의 수도가 위치했던 베이징이나 시안(西安)·선양(瀋陽)에 있는 초대형 궁궐은 모두 제왕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국의 과시 문화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구시보의 스화(石華) 수석기자는 “봉건왕조 시대 중국은 관료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대신들 수천 명의 일터였던 자금성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CC-TV나 인민은행도 직원이 1만 명 이상인데 어떻게 작게 짓겠나”라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문화 전문가는 “책봉과 조공 관계로 동아시아 질서가 짜였던 근대 이전에는 조공국에서 온 사신들을 압도하는 효과도 있어 중국 중심의 질서를 내면화시키는 장치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구사회학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베이징대 관스제(關世傑) 교수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베이징의 각종 시설이 포화 상태에 빠져 건물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며 “중국에선 인구 문제를 빼고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교통 인프라와 문화·체육시설은 소득이 늘어난 도시 주민의 여가소비 예상 증가분을 반영해 크게 짓게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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