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상외교 파트너 해부 ② 후쿠다 일본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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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21일 방일 중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2) 일본 총리는 종종 ‘신중거사(愼重居士)’로 불린다. 6선 의원을 지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때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을 역임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매사에 신중하고, 점잖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총리가 된 후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카리스마나 색깔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성향이나 성품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의 개인생활과 취향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독서=역사물을 중심으로 문화·경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독하는 스타일이다. 그중에서도 그가 꼽는 애독서는 일본 역사학자 아사카와 간이치(朝河貫一·1873~1948)가 쓴 『일본의 화기(禍機)』. 예일대 교수였던 저자가 러일전쟁 직후인 1907년 쓴 외교평론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주변국들을 무시하게 됐고, 이런 우월감은 이후 일본 외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내용이다.

후쿠다 총리는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1905~1995) 전 총리의 아들이지만, 정계 입문은 매우 늦었다. 대학 졸업 후 17년간 정유회사에서 일하다가 1976년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가 90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될 즈음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일본의 미국시장 잠식을 우려했고, 단체 해외여행을 떠난 일본인들의 명품 사재기가 종종 화제가 됐다. 후쿠다는 당시 상황을 “전쟁과 경제라는 차이는 있지만 러일전쟁 직후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후쿠다는 훗날 “이 책을 통해 국가와 국가가 만나는 법을 배우게 됐고, 이를 계기로 미·일 관계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주변국과의 갈등을 야기했던 전임 고이즈미·아베 총리와는 달리 아시아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다지고 있는 후쿠다 총리의 외교노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책이다.

◇좋아하는 음식=음식보다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다. “음식이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들과 마주 앉았을 때 가장 맛있는 법”이라는 게 그의 신조다.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젠틀맨’(신사)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그의 부드러운 테이블 매너가 언론에 공개되면서부터다. 관방장관 시절 그가 프랑스 식당으로 초대했던 유명 여성 앵커는 “영화에서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후쿠다의 교양과 매너에 반했다”고 말했다. 저명한 정치인의 집에서 성장한 때문인지 식사하는 모습에는 기품이 흐르고 귀족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탁에 빠질 수 없는 게 와인이다. 그런데 와인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메밀국수(소바)와 생선회도 그에게는 훌륭한 안주다.

누구보다 풍요롭게 자랐을 법한데도, 불필요한 지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주위 사람이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주문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그 정도면 됐다”며 제동을 건다. 늦은 밤 집으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부인 기요코 여사가 30년산 발렌타인을 대접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그렇게 비싼 술을 낼 필요가 있었느냐”고 잔소리를 했다는 이야기는 기자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두루 좋아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소바·우동·라면 같은 면류와 전갱이·꽁치를 즐긴다. 육류도 좋아하는데 스테이크는 살짝 익힌 것을 좋아한다. 공무가 없는 주말 밤, 부인이 직접 만든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취미·건강=독서 외에도 클래식 애호가로 유명하다. 중학교 2학년 때 구입한 베토벤 교향곡 5번 레코드판을 들으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게 됐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 있는 헝가리의 현대 작곡가 바르토크의 곡들도 즐겨 듣는다. 바로토크는 헝가리 민속 음악과 집시음악을 발굴한 인물이다.

2004년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 외에는 매우 건강한 편이다. 그러나 올해 72세인 점을 감안해 각별히 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 젊을 때는 스포츠를 매우 즐겼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서 포수를 맡았고, 젊은 시절에는 등산과 골프·볼링을 했다. 2005년부터 지난해 총리 취임 직전까지는 일본카누연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하는 운동은 총리관저 안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도. 총리실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오노 마쓰시게(大野松茂) 내각 관방장관은 “‘야채를 충분하게 섭취하라’ ‘너무 참지 말고 가끔은 야당 대표나 의원들에게 화를 내라’는 등 국민이 보내온 스트레스 해소법이 60여 가지에 달하지만, 총리가 실천하고 있는 것은 걷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술을 자제하고 가급적 오후 8시에는 공무를 마치고 사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또 다른 건강비법이다.

◇패션=키 1m70㎝에 세련된 매너를 갖춘 부인 기요코 여사가 그의 코디네이터다. 그는 정치명문가 출신답게 “옷차림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항상 성장을 즐기는 댄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젊은 유권자보다 중장년층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쿨비즈 차림을 장려한 일이 있었다. 여름철 관청 실내온도를 높이는 대신 양복과 넥타이를 벗고 셔츠 차림의 출퇴근을 허용했다. 그러나 후쿠다 총리는 당시 여당 의원 중에서는 드물게 쿨비즈에 동참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폼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캠페인 기간 내내 넥타이·양복 차림으로 다니면서 더위를 이겨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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