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까지 시도했던 부장판사 ‘시련과 극복’사연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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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했던 인천지법 이우재 부장판사가 18일 사무실에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증은 치료 가능한 질병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고시를 합격해 판사로 승승장구하던 최고의 엘리트. 그게 인천지법 민사101부 이우재(43) 부장판사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밖에 비쳐지는 모습일 뿐이었다. 그는 실제로는 재판을 하면서도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죽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고,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부장판사가 우울증에 빠졌던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한 글이 법조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인천지방변호사회의 회지 ‘인천법조’ 8집에 실린 내용이다. 무려 35쪽 분량이나 된다.

이 판사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하루 자살자는 35.5명”이라며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지만 남자들의 경우 우울증에 걸렸어도 그걸 공개하고 병원에 가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도 2006년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자살 계획을 세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부장판사가 이런 경력을 공개하는 게 아마 앞으로 공직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내 정신 상태가 의심받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우울증은 병일 뿐이며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또 누구나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기고 이유를 밝혔다.

◇끔찍한 우울증=경기도 가평 출신인 이 판사는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가평군 출신 최초의 판사였다. 연수원 졸업 성적이 선두그룹에 속해야 갈 수 있는 서울중앙지법에 배치됐다. 당시 법원장이던 변재승 전 대법관의 지시로 재건축 관련 재판실무지침서를 집필했다. 이후 민사항고 사건을 담당하는 민사51부로 옮겨 법원 내 절차법의 전문가가 됐다.

잘나가던 그에게 41세가 된 2006년 시련이 다가왔다. 가족갈등과 주식 투자의 실패, 쏟아지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난 것이다.

이 판사는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잠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다. 나중엔 퇴근이 두려웠고, 오후 4시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명상을 하고, 한의원을 다니고, 달리기를 하고 수면제를 복용하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당시 관사에 혼자 살았는데 며칠을 잠을 못 자니 정신이 혼미해지고,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인생이 편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두려워 관사 아파트의 모든 창문을 꼭 걸어 잠그고 살았다.”

하지만 불면과 우울증의 고통에 시달리던 이 판사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석가탄신일에 안방 목욕탕에서 샤워 호스를 목에 감고 욕조에서 발을 뗐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자살 시도였다. 호스가 목을 조이자 가슴속에서 커억 하면서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머리에 핏발이 서는 순간, 호스가 벽에서 빠지는 바람에 찬물만 뒤집어 쓰고 실패했다. 욕조 바닥에 자빠져 있다가 일어나 욕조에 머리를 찧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이 판사는 자신이 끊임없이 죽을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아야 한다는 이성의 의지와 죽고 싶다는 우울증의 유혹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기도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고, 이 판사는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병가를 내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는 속세를 벗어나기로 했다. 병가를 내고 산속의 수련원에 들어갔다. 엄격한 수도생활과 노동, 끊임없는 참선은 한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겨났다. 제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는 하산키로 했다.

“내가 평생 세상을 등지고 도피해 산속에 처박혀 살 게 아니라면 이제는 그냥 부딪히며 살면서 깨우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제 살면서 깨우치자.”

◇다시 세상 속으로=이 판사는 회복을 위해 정신과 의사를 다시 만났다.

“집 근처의 정신과 의사와 면담했다. 의사와의 면담은 영화에서처럼 최면에도 빠지고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내가 산에서 깨닫지 못한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길 원했지만 매번 면담은 5분도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는 내가 대부분의 문제를 이미 극복했고 의지가 강하니 업무복귀는 문제가 없다고 용기를 주었다.”

이 판사는 “법률적 문제가 생기면 즉시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충고하면서 정작 내 정신적 문제는 왜 그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고 적었다. 그는 “돌이켜보면 내가 깨우친 가르침은 결국 (내 우울증에 대해) 판사 동료들이 해준 충고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완치돼 새로운 모습으로 법원에 돌아왔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짧은 기간에 극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오히려 진작 이런 일을 겪었다면 판사로서 사는 데 진정 도움이 됐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판사라고 하면 냉철하고 모든 것을 치밀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라고들 생각한다”며 “하지만 나는 오히려 판사가 이런 경험담을 공유함으로써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박성우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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