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inStyle] 정치학계와 방송의 총아가 스타일을 외면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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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디서든 꼭 눈에 띄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외모나 재능 덕분이다. 본인이 원치 않는데도 도드라져 보인다면, 당사자로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항변해봐야 더 튀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니. 여기 한 여성이 있다. 경희대학교 김민전(43·학부대학)교수.

그는 10여년 이상 학계는 물론이고 신문·방송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 왔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조심스러워 하는 스타일이다. 언행뿐만이 아니다.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꼭꼭 숨어들려고만 하는 그의 스타일. 혹시 여자가 튀면 죽는다는 사회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나름의 가설을 갖고, 그를 시험하기로 한다. 파격적인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의 내면에 잠재된 여성으로서의 끼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답 메일이 왔다. 미용실은 과하단다. 역시 조심스러웠다.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결벽

수업이 끝날 무렵 불쑥 경기도 수원의 학교로 찾아갔다. "연구실이 지저분해서 민망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변에 신경 쓰느라 너무 숨죽여 지내는 것이 아닐까?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그가 선선히 시인한다. “세상이 나를 괴롭히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괴롭혀야 직성이 풀려요. 일종의 결벽증이죠. 대학교때도 저녁을 남하고 먹은 기억이 없어요. 물론 술도 전혀 안 마셨고. 누구로부터로든 험한 뒷얘기를 듣지 않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하곤 했어요.”

그렇다면 옷차림은? “그것도 그런 결벽증과 관련이 있죠. 무조건 바지에 운동화만 신어요.” 그러면서도 연신 그는 “여기자하고 인터뷰 하면 안 되는데. 너무 솔직해져서...”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절제를 다짐하는 자기 암시처럼 들린다. ...”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절제를 다짐하는 자기 암시처럼 들린다.

# 주목받기에 정식으로 도전하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입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는 어떨까? 그의 다짐처럼 됐을까? 뒷공론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까?

“왠걸요. 노력할수록 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간이 돼 버리더라구요.” 그가 소리 죽여 웃으면서 말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방송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토론 프로그램에 세 번인가 얼굴을 내밀었을 때, KBS에서 방송을 제안해왔다. 2001년 당시의 일이었다. 한 달여를 망설이다 '추적 60분'의 진행을 맡기로 했다.

그 후 보수적으로 소문난 학계, 그것도 남성 중심인 정치학계에 입문했다. 여기서는 또 어떤 얘기를 들어야 했을까? 게다가 그는 정치학계가 '정통'으로 치지않는다는 외교학과 출신이다. 할 얘기가 많은 듯, 입을 열려다 다시 굳게 입을 다문다. 두 번째로 그가 물러선다.

# 초연한 삶

그래도 그는 요즘 한결 느긋하고 편안하다. 모든 종류의 뒷공론에 초연해졌다고 한다. 예뻐서 성공했다거나 텔레페서(방송 출연을 즐기는 교수들)라는 지적도 한 귀로 흘려듣는 편이다. 그는 그것을 2004년 죽음의 문턱 직전까지 갔던 경험 덕으로 돌린다. 그 해 1월, 김 교수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었다. 빨리 수술을 받으라는 권유에도 그는 참고 수업을 진행했다. 사전에 약속해둔 TV 토론회도 강행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수술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는 자신한테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 이상 애쓰지 말자. 나를 불편해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자신을 증명하려 들면서 살지는 말자. 조금이라도 더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 나, 그리고 가족…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잘 난 여자들이 그렇게 살아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그렇게 잘 난 사회가 아니지 않을까? 김 교수의 집 근처인 분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강권 하다시피 했다. 그가 마시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 묻지도 않고 와인을 한 병 주문했다. 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치는 안 할 건가요?”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은 정치를 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싫어서라도 한사코 학계에 남겠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치열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에게 내리고 싶은 상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졌다. 그가 좋아하지도 않는 와인을 끝내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답한다.

“예전에는 60대가 되면 무용 발표회를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그 일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금 그 꿈은 접었고, 혼자 조용히 산 속에 도망가서 얼마간이라도 지내고 싶어요.”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문자가 쉴새없이 날아드는 눈치다. 그가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건네 문자 하나를 보여준다.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아들의 투정 어린 글이다. 이제는 정말 일어서야 할 때가 됐다며, 그가 조심스럽게 사라져간다. 마지막으로 물러서는 것조차 그답다.

글·사진=이여영 기자

※그는 단 한번도 치마를 입거나 하이힐을 신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차림새인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런 평가에 대해 김 교수는 “그래도 생각은 예전에 비해 많이 자유로워졌는데, 옷차림은 갈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여성의 미모와 스타일이 성공에 어떤 영향을 줄까. 김 교수는 “자기 분야에서 일정 궤도에 오르고 나면 미모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분명 안 좋은 영향을 준다. 능력 없는 여자가 미모로 성공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력부터 평가받고, 미모는 나중에 가꾸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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