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장욱진.유영국 회고전 통해 다시 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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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김환기(金煥基).장욱진(張旭鎭).유영국(劉永國).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현대미술의 거장들이다.
역사가 짧은 한국현대미술의 초기에 이들은 나란히 신사실파(新寫實派)동인으로 활동했었다.한국현대미술 위에 굵은 자취를 남긴이들 세명이 45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최근 각기 다 른 전시장에서 나란히 소개되고 있다.
세사람중 가장 먼저 세상을 뜬 김환기화백은 아내가 건립한 환기미술관(6월7일까지)에서 그의 한 시기 대표작을 모두 보여주는 테마전을 열고 있고,장욱진화백은 호암갤러리(5월14일까지)에서 사후 5주기를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다.거기에세사람중 외롭게 혼자 남은 유영국화백이 최근 13년만에 자신의작품세계를 정리하는 작품전을 갤러리현대(26일까지)에서 열고 있어 이들의 인연을 알고 있는 미술계사람들과 애호가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이 나란히 몸담았던 「신사실파」는 김환기가 주축이 돼 결성한 단체.48년 해방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서울 화신화랑에서 열린『신사실파 창립회원전』이 이들의 만남의 시초였다.
신사실파의 창립동인에는 이들 세사람외에 이규상(李揆 祥)씨가한사람 더 포함돼 있다.신사실파는 그후 49년에 동화화랑에서 2회전을 가졌고 전쟁으로 3회전은 이중섭(李仲燮).백영수(白榮洙)가 새로 합류한 가운데 53년 피난지인 부산 국립미술관화랑에서 가졌다.단 세번으로 동인활동은 막을 내렸지만 이들의 활동은 광복이후 이데올로기대립에 휩쓸려 정상적인 작품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에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한 예술활동으로 오래도록기억됐다.
김환기와 장욱진.유영국 이 세사람은 유달리 공통점이 많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생사마저 초월한채 4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나는 인연이 계속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먼저 출생에서부터 이들의 유사점이 발견된다.김환기화백은 1913년생,장욱진화백은 1918년생,유영국은 1916년생으로 모두 1910년대에 태어났다.셋 다 넉넉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도 비슷하다.거기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매를 맞아가면서 「환쟁이」의 길로 들어선 것도 같다.1930년대에 일본에 유학,도쿄(東京)에서 그림공부한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후 본격적인 활동도 「신사실파」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고4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95년 4월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전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특히 장욱진화백과 유영국화백의 인연은 깊다.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교)를 함께 다녔고 6.
25전쟁 때는 반년동안이나 한집에서 살기도 했다.둘은 이처럼 같은 길을 가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 가장 힘겨운 경쟁상대이기도 했 다.그렇지만 유영국화백은 「장욱진전」이 열리는 시기를피해 일부러 조금 늦게 자신의 회고개인전시를 시작하는 것으로 앞서간 친구에 대한 우정을 나타냈다.
한국현대미술의 역사가 짧은 우리화단에서 45년전 나란히 활동했던 작가들의 또다른 모습을 보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미술계에서는 이들의 인연을 새삼 느끼며 이들이 「신사실파」이후 각자걸어간 길을 보여주는 세 전시에 남다른 시선을 보내고 있다.
〈安惠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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