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좌우 물길 바꿔 흘러도 바다로 가는 걸 포기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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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고별 만찬이 24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만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전·현직 장·차관 23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4일 ‘물’ 이야기를 남기고 파란만장했던 5년을 마무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세종실에서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는 “패배를 받아들여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고 항상 얘기해 왔다”며 “산간지역은 물론 평지에서도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꾸어 가면서 흐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 사는 이치가 그런 것 같다”며 “어떤 강도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좌우 물길을 바꾸며 흐른다’는 발언에 정권 교체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담은 셈이다.

그는 국무위원들에게 “오늘은 좋은 말씀만 해주신 것 같은데 살다가 술자리 등에선 쓴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간담회에 함께 자리한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당신 이 방에는 처음 앉아보죠. 섭섭할 뻔했어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권 여사는 국무위원이 아니어서 세종실을 이날 처음 들어와 본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에서 해양수산부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을 표현하고 교육부에 대해선 로스쿨과 관련해 끝까지 홍역을 치른 점을 거론하고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은 전·현직 장·차관급 인사 230여 명과 청와대 영빈관에서 고별 만찬도 했다. 이 고별 만찬이 노무현 정부의 5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마음의 미안함과 감사함이 있다. 5년 내내 풍파가 많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부하 공무원들에게 앞으로 원칙으로, 실력으로 승부하는 공직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해 달라”고 말했다. 또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도 공격받는 자리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가치의 어느 한편에 서 있는 참여정부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위로했다.

고별 만찬엔 노 정부의 총리들 중 고건 전 총리가 유일하게 불참했다.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밤을 청와대 관저에서 보낸 노 전 대통령은 25일 오전 비서실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 국회에서 열리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밤 방영된 MBC 스페셜 ‘대통령으로 산다는 것’이란 프로그램에서 ‘성공하는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냐’는 질문에 “누구에게나 100% 다 맞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게 맞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한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그러면서 “수직적 질서에 의해 만들어놓은 많은 제도들이 불편하고 힘들었다”며 “보기에 따라 우리나라 대통령 직이 너무 수직적인 위치에 있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수평적 인간이어서 대통령직에 좀 안 맞았거나… 어떻든 그 점이 제일 힘든 대목이었다”고 회고했다.

‘퇴임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여행”이라고 답변한 노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항상 잘 다니는 곳을 가고 싶다. 시장에도 가고, 밥집에도 가고, 극장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인 청와대 브리핑도 24일 오후 6시 폐쇄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하고 난 뒤 개인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www.knowhow.or.kr)을 개통할 예정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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