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는 바다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해안에 기름띠가 몰려오면 죽기 살기로 막을 생각입니다."
10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방포. 7일 오전 충남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로 기름띠가 조류를 타고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면도 주민들은 하루 종일 바닷가를 떠나지 못했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천수만 주민들도 비상이 걸렸다.
◆주민들이 "안면도 지키겠다"=이날 오전 7시 옅은 기름띠가 남면 몽산포 앞 거아도와 안면읍 방포항 앞 외파수도까지 번지자 어민들은 배를 동원해 연안을 돌아봤다. 아직 기름띠가 짙게 퍼지지 않았지만 옅은 기름띠가 수막을 형성해 주민들은 조만간 양식장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곳은 안면도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이다. 깊은 수심과 빠른 조류 때문에 수십 년 전부터 전복.해삼 양식장으로 이용돼 온 내.외파수도 주변에는 옅은 유막이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흘렀지만 다행히 연안에는 유입되지 않은 상태다. 오전에 채취했던 전복은 아직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고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외파수도에서 40여 년간 양식업을 해 온 라명화(60)씨는 "지금은 조류가 빠르고 물이 많이 들어오는 사리 때라서 피해가 커질 것"이라며 "기름띠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 목숨을 걸고 주민들이 방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안면도는 태안군 총어장 5647㏊(445건) 가운데 35%가량인 1966㏊(143건)에 양식장이 넓게 분포해 있다.
섬 주변에는 멀리 신진도부터 몽산포항.방포항 등에서 나온 어선 30여 척이 조업 중이었지만 기름띠가 발견되지 않을까 연방 확인하느라 작업이 더뎠다. 이곳에는 우럭.꽃게.소라.붕장어 등의 어종이 풍부해 태안은 물론 보령.서천.당진에서도 배들이 몰려온다.
안면도에서 배를 몰고 나온 신창선(52)씨는 "여기는 태안반도에서도 가장 청정한 해역으로 어민들이 자식과도 바꾸지 않을 어장"이라며 "아직 기름띠가 보이지 않지만 조류가 가장 빠르다는 내일(11일)이 고비일 것 같다"고 말했다.
◆"천수만 오염되면 환경 대재앙"=매년 가창오리.노랑부리저어새.청둥오리 등 300여 종 400여 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오는 천수만 A.B지구도 비상이 걸렸다. 해경은 오일펜스를 쳐 기름의 천수만 유입을 차단하겠다고 나섰지만 옅은 유막까지는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운근 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기름띠가 유입되면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 천수만에 환경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며 우려했다. 천수만은 태안.서산.홍성.보령 등 충남 서해안 4개 시.군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다. 천수만 입구 마을인 남면 당암리 어민들은 이날 5척의 어선을 동원해 거아도 인근에서 방제작업을 했다.
거아도까지 기름막이 둥둥 떠 있었다. 거아도는 천수만에서 직선으로 7~8㎞밖에 떨어지지 않아 밀물 때면 이곳의 기름들이 천수만까지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천수만은 태안반도에서 유속이 가장 빠른 곳이다. 유제두 당암리 이장은 "천수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나왔다"며 "해경에서 오일펜스를 쳤지만 결국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지락으로 유명한 황도 앞 개펄에는 마을 주민 20여 명이 나와 채취작업을 했다. 이곳에서 만난 오용접 황도리 이장은 "오늘이 바지락 작업을 하는 마지막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밀물 때 들어온 기름띠가 썰물 때는 함께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해안에 남아 어장이 황폐화할 것"이라고 했다.
태안=신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