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 태안 방제 현장에 '지휘탑'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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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충남 태안반도 만리포해수욕장.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와 주민이 해안가로 밀려온 기름을 걷어 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부분 기름을 뒤집어쓴 채 구슬땀을 흘렸다. 방제 작업을 하던 한 사람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백사장 앞에 마련된 태안 관광협회 사무실로 뛰어들어 갔다. 만리포에서 가게를 하는 남의순(61.여)씨였다.

"지금 방송한 사람 누구요. 모래 위의 기름만 걷어 내라고? (백사장에)나와 봤어요? 모래와 기름이 떡져 있어. 모래까지 걷어 내는 수밖에 없어요. 도대체 현장에는 아무도 없고, 이게 뭡니까."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위해 공동으로 마련한 이 사무실에는 스피커가 설치돼 있다. 해안경찰과 태안군청 관계자들은 가끔 그곳에 들러 안내방송을 했다. 그러나 백사장 작업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안가 방제 작업이 체계적인 지휘 없이 우왕좌왕 이뤄지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해안가에서 기름을 걷어 내고 있지만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없어 작업 속도가 더디다고 안타까워한다.

태안면 어민 이성원(50)씨는 "해양도 중요하지만, 해안가에는 양식장과 해수욕장이 있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지휘가 필요하다"며 "도대체 머리(지휘자)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왕좌왕하는 현장=만리포 현장에는 해경.군청.소방방재청 관계자들이 파견돼 있다. 하지만 "방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현장 지휘를 누가 맡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답을 못한다. 방송을 하러 사무실에 들른 해경 방제팀 관계자는 "재난법상 전체 지휘는 소방방재청이, 해양은 해경이, 해안은 해당 지자체(태안군)가 맡는다"며 "엄격히 말하면, 해안가 방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자체 및 방재청 파견자들과 연락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해안에는 방재청 소속 방송 송출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자체 재난 방송(네마TV)을 촬영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방재청 직원은 "태안군청 과장이 전화번호를 남기고 갔다"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들 역시 해경이나 지자체와 협조해 현장 관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현장에 나와 있는 군청 과장은 "지원 물품을 분배하는 게 우리 일"이라고만 말했다.

◆무얼 할지 몰라 겉도는 자원봉사자들=이렇게 각 기관이 따로 노니 시간을 쪼개 이곳에 온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겉돌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 옆 사람이 하는 걸 따라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답답해 방재청 본부로 연락을 하자 방재청 측은 재난대책본부가 설치된 해양수산부에 연락해 보라고 했지만, 해양부는 "방제에 관해서는 해경에 문의하는 게 빠르다"고 답했다. 참다 못해 만리포 관광협회가 해안가 방제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일을 나누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태안=강인식.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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