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단, 가짜 탈레반에 몸값 줬을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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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경찰이 2일 수도 카불에서 140㎞ 떨어진 가즈니주의 한 검문소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이날 탈레반이 한국 정부 관계자와 직접 만나 인질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가즈니 AP=연합뉴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2일(한국시간) 인터넷판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사태를 다룬 특집 기사를 실었다. 잡지는 납치에 관여한 탈레반 반군 지휘관들과 위성전화로 통화해 입수한 사건 당시 상황과 협상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인질 건강 악화=현재 남아 있는 한국 인질은 여자 16명, 남자 5명이다. 이들은 탈수증과 소화기 질환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있다.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은 상태가 위중하다. 한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여성 인질들의 운명이 서둘러 결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내 의견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인질의 일부는 1일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팍티카주로 옮겨졌다. 탈레반의 한 지휘관에 따르면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이 가즈니주 안다르 지역을 압박해 오자 인근에 은신하고 있던 탈레반 대원들이 인질 3명을 데리고 서둘러 이동한 것이다. 이번 주 초에도 헬기의 지원을 받은 아프간 정부군이 카라바그와 셀가리 지역 사이에 있는 친탈레반 마을을 공격했다. 그러나 인질은 발견하지 못했고, 주민들에게 탈레반에 협력하지 말라는 전단만 뿌리고 철수했다.

◆탈레반 2명이 납치=7월 19일 오토바이를 타고 카불~칸다하르 간 고속도로를 순찰하던 탈레반 무장대원 2명이 아무런 경호도 없이 이동 중이던 흰색 버스를 발견했다. 23명의 한국인이 탄 버스였다. 무장대원들은 오토바이를 버스로 바짝 붙인 뒤 AK-47 소총과 로켓포를 운전사의 머리에 겨누었다. 운전사는 속도를 내 무장세력을 따돌리는 대신 차를 멈췄고 한국인 승객들은 인질로 붙잡혔다. 무장대원들은 운전사에게 버스를 인근 마을로 몰고 가라고 명령했다.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자 다른 탈레반 대원들이 합세해 인질들을 5개 그룹으로 나눈 뒤 카라바그.안다르.데약 지역으로 각각 끌고 갔다.

인질극을 주도한 인물은 가즈니주 탈레반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다. 압둘라는 부하들에게 카불과 칸다하르 간 고속도로를 순찰하며 납치할 외국인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자신의 상관으로 가즈니주 탈레반 사령관인 다로 칸이 6월 미군에 잡혀간 뒤 외국인 납치를 기도해 왔다. 칸은 물론 다른 수감 동료와 맞교환할 인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1 대 5 교환 요구=한 탈레반 지휘관은 "우리는 돈을 요구한 적이 없고 수감자 석방에만 관심이 있다"며 "한국과 아프간 협상단이 납치세력을 자처하는 '가짜 탈레반'과 접촉해 돈을 건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납치세력은 처음에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 인질 23명과 탈레반 수감자 115명을 맞교환하자고 제안했다. 1 대 5의 비율이었다. 아프간 정부가 협상을 질질 끌자 탈레반은 같은 수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했고 그 뒤 다시 8명으로 후퇴했다. 탈레반은 현재 교환할 수감자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통보한 상태다. 아프간 정부는 수감자 중 일부가 카불 인근 바그람 미군 기지에 갇혀 있어 미국의 동의 없이는 석방이 어렵다고 버티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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